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이 시작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과 가리봉동 일대. 경찰과 법무부 직원들로 구성된 단속 반원들이 들이닥친 식당이나 여관 등은 때마침 찾아 온 초겨울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썰렁했다. 첫날 단속을 예상했던 터라 이곳에서 일하던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다 빠져나가고 자취를 감췄기 때문. 단속반원이 찾은 업소들마다 일손 부족을 탓하는 주인들의 한숨과 푸념들만 가득했을 뿐이다.제보로 불법체류자 붙잡기도
서울 오류동에서 체류기간이 4년 이상 된 재중동포 2명을 데리고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김모(48·여)씨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생각에 '다음에 연락한다'면서 지난주 금요일 2명을 모두 내보냈다"며 "일용직 파출부라도 구해보려고 직업소개소 10여 군데에 전화를 했지만 거기도 모두 재중동포를 쓰던 터라 보내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상계동에서 3평짜리 배달전문 횟집을 운영하는 손모(39)씨는 "배달을 하던 재중동포가 '시골에 내려가 숨어 살다 단속이 뜸해질 때 다시 오겠다'면서 떠나 배달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사실 유흥·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은 재중동포 밖에 없는데 정부 단속으로 상인들만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모텔 청소를 하던 재중동포 2명을 보냈다는 오류동역 인근 A모텔 여사장 최모(50)씨는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더러운 일을 재중동포들이 맡아왔는데 앞으로는 누가 여관 청소를 하려 하겠냐"며 하소연했다.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강서 일대를 돌던 단속반은 제보를 받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S사우나로 출동, 불법체류자인 곽모(41)씨를 붙잡았고 앞서 오후1시께에도 부인이 가출한 것에 앙심을 품은 사위의 제보로 서울 대림역 앞 3층 빌라 지하방에 살고 있던 재중동포 노부부가 붙잡혀 강제 출국길에 오르게 됐다.
조선족 타운에는 적막감
재중동포가 북적이던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은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한때 3만명이 넘는 재중동포들로 들썩이던 이곳이 1차 단속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1만여명이 출국하거나 잠적했기 때문. 재중동포들을 상대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43)씨는 "저녁 때면 일을 마친 동포들로 붐볐는데 이젠 월세도 내기 힘들게 돼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중개업소 밖에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20만원인 일명 '벌집'에 대한 매물 정보만 잔뜩 나붙었을 뿐 찾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일부 벌집 집주인들은 짐을 방안에 둔 채 방세를 내지 않고 잠적한 재중동포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체류기간이 5년이어서 강제출국 대상자가 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출신인 재중동포 최모(53)씨는 "단속반원들이 쪽방까지 일일이 뒤질 수야 있겠느냐"며 "단속이 뜸해질 때까지 사글세 방에 숨어 지낼 생각으로 한달 가량 먹을 것을 준비해놓았다"고 귀띔했다.
"당장 숙련공 어디서 구하나"
정부가 제조업에 종사하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는 단속을 한시적으로 유예키로 했지만 이미 중소 영세업체 등 산업현장에도 여파가 미치면서 곳곳에서 인력난을 호소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 구로구 온수공단내 휴대폰 제조업체인 Y공장은 14일부터 생산라인을 사실상 멈췄다. 10명의 외국인노동자 9명이 국내 체류기간이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여서 모두 출국했거나 잠적했기 때문. 사장 전모(40)씨는 "합법화한 외국인 노동자를 다시 구한다 해도 이들을 숙련공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3개월 이상은 걸려, 상품 경쟁력에서 떨어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1만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북적댔던 인천 남동공단도 4,000여명의 불법 체류자들이 잠적해 극심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B업체 생산부장 안모씨는 "걸리면 벌금 2,000만원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잠적한 숙련공을 찾아 고용할 수 밖에 없다"며 "이미 3D업체에서 숙련공으로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하던 외국인노동자를 모두 내쫓겠다는 것이 과연 능사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경기 의정부시 용현산업단지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카리프(29·가명·체류기간 5년5개월)씨는 "사복을 입은 경찰이 합동단속에 투입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외국인 노동자끼리 휴대폰으로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이주노동자센터 양혜우 소장
"실효성 없는 강제추방은 결국 우리 경제와 이주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슴만 멍들게 할 겁니다."
한국이주노동자센터 양혜우(37·여·사진) 소장은 강제추방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양 소장은 "단속 대상이 되는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는 밀입국자를 포함해 총 10∼15만여명에 달하기 때문에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수용 인원과 여권 발급 기간, 항공편 마련 시간 등을 고려하면 매달 3,000명이 출국한다 하더라도 전원 추방에는 5년 이상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양 소장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진 출국보다는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잠시 숨는 길을 택하고 있다"면서 "결국 실현 불가능한 정책으로 일손이 필요한 업체의 인력난만 가중시키고, 소득도 없이 숨어 지내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 소장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사면 조항.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3월말 현재 4년 미만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서 취업 확인서를 발급 받은 사람만이 강제추방 대상에서 제외된다. 4년 이상 장기체류자, 올 4월 이후 입국한 신규 불법 체류자는 제외돼 있을 뿐만 아니라 3년 이상 4년 미만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도 출국한 뒤 입국보장 증명서를 발급 받아 재입국 하도록 하고 있어 결국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강제출국 대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양 소장은 "신규 불법 체류자들의 경우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진 1,000여만원의 빚을 고스란히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는 4년 이상 장기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아이들이 학교나 탁아소에 맡겨진 사이 부모가 추방되는 비인간적인 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법 개정을 통해 자진 출국 유예기간을 늘리고, 재입국을 보장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법 개정이 안 될 경우 강제출국 조치를 비관, 자살한 다라카, 비쿠 같은 사례가 계속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 정부 후속대책
불법체류 외국인 집중단속 방안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법무부 등 관련 정부 부처도 이를 고려해 다양한 후속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우선 상당수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미 잠적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단속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법무부는 장기간 단속 등 강공책과 자진 출국 유도라는 유화책을 병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자진 출국기간 종료 후에도 당일 항공권과 여권을 소지하고 공항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만 하면 범칙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외국인 숙련공들의 일시 출국 및 잠적 등으로 인한 영세 제조업체의 고충도 감안, 중소 제조업 종사자들은 당분간 단속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또 인력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연수생을 쿼터 한도 내에서 신속히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한때 유치장 수용 방안까지 고려돼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됐던 불법체류 외국인 수용 문제도 점진적인 해결 방안 모색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법무부는 일단 경기 화성 외국인보호소의 보호시설을 증축하기로 하고 최근 설계 공모까지 마쳤다. 또 출입국관리소 보호시설과 각종 연수시설, 수련원 등을 수용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치들이 미봉책에 그쳐 단속이 계속될수록 문제점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 범칙금 면제 등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사후 입국규제 등 문제가 남아있어 자진 출국의 실효성이 의심되는데다 사전홍보 부족으로 상당수 제조업 종사자들이 이미 단속 대상인 '근무지 이탈자'가 돼 버린 상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1992년 이후 16차례 시행된 불법체류 외국인 대책이 모두 자진출국 및 사면 등으로 단속은 이번이 처음이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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