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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파병과 "생각있는 한국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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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파병과 "생각있는 한국사람"

입력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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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정세가 급속히 악화한 지난 주, 나라 안팎 언론에 등장한 숱한 말과 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무지몽매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제넘은 건방을 떠는 게 아니다. 필자를 비롯해 언론에 말하고 글 쓰는 이들이 초라한 식견과 논리로 파병 찬반을 떠드는 데 비해, 서구 언론과 논객들은 폭 넓은 지식과 안목으로 이념에 관계없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는 것에 새삼 서글픈 무력감을 느꼈다. 파병에 어떤 국익이 걸렸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리 없지만, 여론을 이끈다는 이들이 이렇게 왜소·천박해서야 나라가 과연 올바로 갈 수 있을까 비관하는 것이다.자책은 접어두고 이 사회의 무지몽매함을 절감케 한 말과 글을 적시하려 한다. 서론이 거창했으니 금도(襟度)를 벗어나더라도 그게 옳을 것이다. 먼저 지적할 발언은 이른바 정신적 집권당의 정책위의장이 청년실업으로 취업이 어려운 제대 군인들을 파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속 깊은 충정이 뭐든 간에, 전쟁과 파병을 경영게임의 묘수찾기 정도로 인식한 발상으로 들린다.

파병에 찬성하는 것은 매도해서는 안되겠지만, 처지가 어려운 젊은이들의 안위는 소홀하게 여기는 발언은 듣는 사람을 부끄럽게 했다. 고작 이런 궁리를 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국가의 자존과 도리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기대하는 것은 헛되다. 파병이 국위선양에 이바지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이런 무도한 발상을 국제 사회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헤아려 보기 바란다.

다음 사례는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보수 논객이 새삼스레 주한미군과 추가파병을 결부시킨 국익론을 웅변한 칼럼이다. 미국은 예비군까지 동원하면서도 3만7000명이나 되는 주한미군은 손대지 않으려 애쓰는 데, 고작 3,000명 파병에 인색한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얼굴없는 미국 관리들의 불만을 전하고 있지만, 언론의 글쓰기 관행에서는 필자 자신의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는 '미국의 소리'를 장황하게 인용한 뒤, 결국 '파병반대세력'을 '생각있는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매도했다. 그게 글의 핵심이고, 한미관계가 이상과 합리보다 감정 쪽으로 이입하는 것을 개탄한 것은 사족이었다.

평소 이 논객의 글은 착안과 논리가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칼럼의 논법은 비겁하고 역겨웠다.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과 합리성에 대한 정연한 주장없이, 파병 논란이 기대에 어긋난 것을 못마땅해 하는 감정이 두드러졌다. 미국과 우리의 국가적 선택의 정당성 등에 관한 평가나 고민은 없이, 한미관계와 국익만을 얘기하는 것은 치졸했다.

마지막 사례는 보수의 쌍벽을 자처하는 신문이 이틀사이 파병에 관해 상반된 논조를 편 것이다. 필자가 제대로 읽었다면 이 신문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듯 했던 지난 주말, 미국의 정책이 변했으니 우리도 파병을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연한 사리를 굳이 강조한 곳은 파병지지 발자취를 황급히 지우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진의가 달리 드러나자, 다음날 사설은 다시 50년 동맹정신을 되풀이 강조했다.

필자도 구석자리를 차지한 언론과 사회를 비웃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제대로 된 나라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전쟁과 평화를 논란하는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구 언론은 미국이 조기정권이양으로 점령군을 주둔군으로 정당화할 속셈이고, 4군데 영구기지를 만들고 있다는 등 사태를 정확히 읽고 전한다. 수렁에 빠진 듯한 미국이 경제이권을 송두리째 챙기고 있고, 이 것이 국제법위반이라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이 평화와 정의의 이상만을 내세워 국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각계가 제 고유한 역할을 온전히 하는 것이 국익에 이바지하는 길이고, '생각있는 국민'다운 자세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강 병 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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