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그리는 물리학자 박홍이(59)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가 카툰집 '30원'(야스미디어)을 냈다."염을 해본 적이 있어요. 저승 가는 노자를 가슴에 묻어주는데 10원짜리 동전 하나 넣고 '천냥이요', 또 하나 넣고 '이천 냥이요', 또 하나 넣고 '삼천 냥이요', 하지요. 30원 갖고 가는 게 인생이에요."
책 제목의 풀이처럼 박 교수의 만화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생각하는' 만화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값어치는 있는 장소에 따라 다르다' 등 평범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 교훈적 사실을 주제로 하는 4컷 만화들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도 한데 평생 물리학을 해온 그가 어째서 이런 만화를 그렸을까.
"학생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해주고 싶은데 만화가 가장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었어요." 그는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OHP(오버헤드 프로젝터)로 학생들에게 만화를 한편 보여주고 나서 강의를 한다. 물론 '물리실험' '전자회로' '물리학의 현대적 이해' 등 강의 내용과 만화는 별 관련이 없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 뿐이다. '법구경', '아함경' 등 불경과 성경, 주역 등 경전을 많이 읽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만화의 소재도 이런 곳들에서 나온다.
그런 교훈적 만화는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자 박 교수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있는 만화예요. 바쁜 생활에 책 읽기는 부담이 되는 반면 중요한 아이디어에는 접근하고 싶어하죠. 미국 사람들이 동양사상에 열광하는 이유가 그런 데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같은 책을 봐도 별 내용이 없다면서 "미국에서 이 책을 출판해 100만부쯤 팔아볼 작정"이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만화에는 영어로 된 제목과 지문이 붙어있다. 박사학위를 딸 때가지 미국에서 10년 이상을 살아 "영어는 좀 된다"고 했다.
그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된다. 1997년께 물리학회 회의 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누군가 물리학회에서 내는 잡지에 만화를 한번 그려보라고 한 것이 계기였다. 박 교수가 만화만 그리는 건 아니다. 아침이면 참선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검도를 한다.
그는 자신을 '나눠주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책을 비롯해 무엇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연세대 교수와 직원, 아는 사람들로 '나눔 동네 사람들'이란 봉사단체를 만들어 소년소녀가장, 혼자 사는 노인 등을 도운 지가 13년이 된다. 한 사람이 한 주에 한 시간 봉사하는 클럽 'TOM'(Three Ones Movement)이라는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1주일에 한 번씩 대안학교에서 검도를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해 국제학술지에 34편의 논문을 발표, 연세대 교수 중 수위를 차지했다. 만화는 그의 '나누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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