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유학 전통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 받는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1875) 탄생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실학과 개화사상의 다리를 놓으며 19세기 격변기에 실증적 태도로 동·서양 사상을 아우르려고 노력했던 그의 독특한 학문 세계를 국내는 물론 중국, 대만, 일본 학자들이 함께 조명하는 자리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원장 임형택) 주최로 21일 오전 10시30분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에는 1990년 '독기학설(讀氣學說)―최한기의 삶과 생각'이란 책에서 혜강을 '문명 축의 전환이라는 보편사적 계기를 이론적으로 완성한 최초의 조선 사상가'라고 평가한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발제자로 참가해 눈길을 끈다. 학술회의 주제는 '혜강 기학의 사상―동서의 학적 만남을 통한 신경지'. 이우성 퇴계학연구원장과 임 원장의 기조발표에 이어 혜강 사상 전반과 서양학문 수용 태도를 짚는 회의가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된다.
혜강의 기철학과 실학사상의 의미를 짚는 제1회의에서는 권오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최한기 기학의 사상사적 의미와 위상'을, 박희병 서울대 교수가 '최한기의 동서취사(東西取捨)론'을, 중국 항콩항톈(航空航天)대 팡완리(龐萬里) 교수가 '최한기의 실학사상'을, 김용옥 교수가 '독인정설(讀人政說)'을 발표한다.
박 교수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최한기의 학문은 19세기 동아시아 사상 지형 속에서 발견되는 담론 중 어느 것과도 구조나 지향이 같지 않다"며 "동과 서가 각각 장점을 살리자는 그의 논리는 부국강병적 근대화론과 거리가 먼 평화롭고 우호적인 세계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한기는 기학에서 도출해 낸 문화상대주의를 통해 '문명 대 야만'이란 차등적 대립의 도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최한기의 기학이 오늘날 생리학, 생화학 혹은 분자생물학이 도달하고자 하는 통합적 이론의 미래 틀을 제시했다"고 상찬해 온 도올은 혜강이 36세에 지어 기철학의 틀을 잡은 저서로 평가되는 '인정(人政)'을 통해 최한기 사상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할 예정이다.
최한기의 서양 과학 수용 태도를 살핀 제2회의에서 '최한기의 신기천험(身氣踐驗) 편집 방법과 그의 기 사상'을 발표하는 재일동포 학자 김철앙 일본 오사카(大阪) 경제법과대 교수는 혜강을 "동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기철학과 근대원자론, 화학적 원자론을 다리 놓은 근대지향적 철학자"로 평가한다.
'최한기의 기학 체계―기철학과 서양과학'에서 역시 혜강의 서양과학 수용 방식을 검토한 가와하라 히데키(川原秀城) 일본 도쿄대 교수는 "최한기의 학문은 실용성과 경험, 수량화와 검증을 중시했지만 만년에는 방법론적 한계에 부닥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최영진 성균관대 교수가 '최한기 운화론(運化論)의 생태학적 해석'을, 대만 칭화(淸華)대 장잉당(張永堂) 교수가 '19세기 동아시아 구망(救亡) 정신에서 본 최한기 사상'을 발표한다.
대동문화연구원은 이날 학술회의에 앞서 후손들이 제공한 최한기 친필 수고와 저서 원본 2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책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의 서적 수집가였으며 천문, 지리, 농학, 의학, 수학 등에 걸쳐 저서만 1,000여 권(현존 15종 80여 권)을 헤아리는 그의 저술을 직접 대할 수 있는 자리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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