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법률안 거부권을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고 못박은 것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노 대통령이 이날 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은 형식적으로는 일반적 법리 논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야당 등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위헌적 발상'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한 법리적 반박이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 입법권을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으로 견제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본질적 부분'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야당 등의 헌법 유린 주장을 "헌법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분립을 얘기하면서 '정부의 수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며 입법권의 한계를 제시한 것도 상당히 민감한 대목이다. 여기에는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측근비리에 대해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킨 것은 입법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수사권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속해 있고 국회가 그 수사권에 개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든가 하는 '보충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인식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현재의 (측근비리) 특검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 보충성이 없기 때문에 권력분립을 위배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최근 대전·충남지역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국회에 시간 조절용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 한걸음 더 나가있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거부권을 행사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권력분립 개념을 빌어 밝힌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논리는 측근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고 완벽한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분립론 자체가 논란거리가 될 소지도 다분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측근비리 특검에 대해 '거부권 행사'라는 외길밖에 없음이 분명한데도, 노 대통령은 실제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생각중"인 것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국회와의 관계에서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거부권을 선언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이날 굳이 법리 논쟁을 들고 나온 것은 "국민들이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듯 야당을 겨냥했다기보다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노 대통령의 이날 특검 관련 발언에는 현재의 특검 법안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2를 넘는 184명의 찬성으로 가결됐으나 재의를 요구했을 경우, 3분의2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은 특검법 가결을 둘러싼 내부 진통에 휩싸여 있다. 노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하면 이유를 붙여서 하게 되는데 그 이유를 국회가 들여다 봤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 대목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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