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을 제시하겠지만, 나는 한국 엘리트의 자폐성(自閉性)을 들고 싶다. 각 분야의 엘리트 계급이 한국 사회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혹은 자기 집단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엘리트의 이기적 탐욕이 지나치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이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기질이거나 '아비투스(습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실은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하면서도 애국적인 행위를 한다고 굳게 믿는 착각이 가능해진다.
'엘리트'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평등주의에 단호히 반대하는 나로서는 엘리트의 필수 조건이 거시적 차원에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회의 안전과 번영에 대해 고민하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에겐 그런 의식이 박약하다. 교육 엘리트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대학 총장들이 다 교육 엘리트에 해당되겠지만, 여기선 '엘리트중의 엘리트'라 할 SKY(서울-고려-연세대) 총장만 문제 삼겠다. 나는 이 분들의 과공(過恭)에 자주 놀란다. 이 분들은 한국 사회 전반의 교육 문제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대학의 이익만 생각하는, 매우 낮은 곳에 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SKY가 잘되는 건 곧 국익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그렇진 않다. 한국 사회 각계의 상층부 엘리트 시장에 있어서 SKY 출신에 의한 기존 독과점 체제의 강화는 SKY의 이익엔 기여할 수 있을망정 대학입시 전쟁을 더욱 격화 시켜 이미 충분히 피폐해진 모든 한국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원적 경쟁체제'다. 그래야 경쟁의 병목 현상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평생 경쟁 체제로 갈 수 있다. 대학의 기존 '고정 서열제'를 노력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변동 서열제'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SKY가 기존의 문어발식 팽창주의를 지양하면서 소수 정예주의로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나는 지난 7일 연세대 김우식 총장과 고려대 어윤대 총장이 '기여입학제'를 공동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때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재정확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한 세계화하고 있는 교육환경에서 국제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주장에 100% 동의하기 때문에 꼭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 나라 교육계를 대표하는 SKY 총장이라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그 엄청난 사교육비를 대학 재정 확충용으로 돌릴 수 있게끔 국가적 차원의 고민을 해보고 그것을 밝히는 게 도리이겠건만, 그 분들은 일편단심 자기 대학 이익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차라리 SKY 총장들로부터 현 대학입시 전쟁을 '필요악'으로 옹호하는 주장을 듣고 싶다. 모든 언론매체가 양산해내고 있는 대학입시 전쟁의 참혹상을 고발하는 기사들이 오히려 나라 망친다고 호통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그 분들의 언행에서 적어도 일관성만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디 SKY 총장들이 낮은 곳에만 임하려는 겸양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슬기롭고 책임감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SKY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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