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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게놈" 비밀을 찾아라/인간과 비교… 질환극복 열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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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게놈" 비밀을 찾아라/인간과 비교… 질환극복 열쇠로

입력
2003.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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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이자 '침팬지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제인 구달(69)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구달 박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저서인 '희망의 이유'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이런 겸손이 지금의 그가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1957년부터 탄자니아 곰비국립공원에서 40여년간 침팬지 행동을 연구하면서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흰개미 사냥을 하고, 젊은 수컷 침팬지가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침팬지를 입양해 키우는 등 인간과 흡사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침팬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150만종의 생물 가운데 인간과 가장 흡사한 동물이다. DNA 구조도 인간과 98% 이상 일치한다. 침팬지는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며 무리를 짓고 계급을 갖춘 사회를 만들며 울음소리나 행동을 통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한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이제 침팬지도 사람과 같은 '호모속(屬)'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침팬지는 인간과 140여 가지의 질환을 같이 앓는다.

하지만 침팬지는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를 비롯,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말라리아 등에는 걸리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 침팬지 게놈 연구를 통해 이 질환들을 극복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만 에이즈에 걸려

에이즈는 1980년대 초 처음 알려진 질병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라는 레트로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한다. HIV에는 HIV-1과 HIV-2 등 두 종류가 있는데 HIV-1은 침팬지에 의해서, HIV-2는 아프리카의 긴꼬리원숭이인 맹거베이원숭이로부터 감염된다. HIV-1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바이러스이고, HIV-2는 서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침팬지는 HIV-1에 감염돼도 거의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가 에이즈에 거의 걸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HIV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HIV 유사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유인원 면역 결핍 바이러스(SIV)'가 그것. 현재까지 많은 종류의 SIV가 규명됐지만 이 중 침팬지와 관련이 있는 것은 'SIVcpz'이다.

HIV-1과 SIVcpz는 어떤 유사점을 갖고 있을까. 이들 바이러스는 다양한 유전자를 공유하는데,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vpu라는 유전자. 이 유전자는 바이러스 게놈의 복제방법을 주관하고 심지어 숙주 종류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바이러스를 복제한다.

즉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에서 적응해 생존할 수 있도록 스스로 복제하는 방법을 바꾼다. 과학자들은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에이즈가 전염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도 vpu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침팬지 게놈 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 실체를 파악한다면 SIV가 어떻게 HIV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왜 침팬지는 HIV에 대해 내성을 지니는지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치매 없는 침팬지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알츠하이머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해결의 단서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유전적 변이에 의해 발병하는 '가족성 알츠하이머병'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발성 알츠하이머병'이 있다.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14번과 21번, 1번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각각 PS1과 APP, PS2)의 이상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인간 유전자 중 한가지에서만 돌연변이가 생기면 예외없이 이 병에 걸린다.

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는데 과학자들은 19번과 12번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각각 ApoE와 a2M)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공통점은 '노인 반점'. 이 반점은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축적되면서 생긴다. 하지만 침팬지는 이 단백질이 축적되지 않아 알츠하이머병도 생기지 않는다. 이 밖에 알츠하이머병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에게 주로 나타나므로 상대적으로 이를 덜 받는 침팬지는 걸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침팬지는 매년 3억∼5억명의 인간들이 감염되고 이 중 300만명 정도가 사망하는 말라리아에도 걸리지 않는다. 올해 초 프랑스의 마지에르 박사는 말라리아 원충이 간세포 표면에 나타나는 특이한 수용체(CD81)를 통해 간세포에 침입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따라 침팬지 게놈 분석을 통해 인간과 침팬지의 CD81유전자를 비교 연구하면 두 질병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를 분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인간유전체연구실 박홍석 선임연구원, 이용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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