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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83>도꼬마리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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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83>도꼬마리 열매

입력
2003.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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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나니, 가는 가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화려하던 단풍잎도 이제 낙엽이 돼 사라지고, 너른 벌판의 억새 군락은 햇살을 받아 잠시 반짝이다가도 바람 한 줄기 깊게 지나가면 이내 긴 여운의 어두움에 갇히곤 합니다.이런 계절에 깊은 산보다 더욱 쓸쓸한 들판이나 산자락에서 끈기와 인내로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도꼬마리 집안의 식구들이죠. 알게 모르게 한 번이라도 만나 부딪히고 나면 어디든지 붙어 도통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에게 기대어 힘들게 살아가느니 우리가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 이 친구들과 세월을 보낼까 싶기도 합니다.

도꼬마리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흔히 들어 잘 아는 것 같지만 도심에서 사는 사람은 이 도꼬마리의 끈질김을 확인할 길이 많지 않습니다. 이 식물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을 가진 분들은 요즘 공터나 숲가, 혹은 들녘에서 만나게 되는 도꼬마리가 예전의 모습과 좀 다르며, 도꼬마리마저도 요즘 세상처럼 더 무성하고 억세다고 느끼게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귀화식물로 가시가 아주 많고 가시에 털까지 있는 가시도꼬마리, 키도 열매도 큰 큰도꼬마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훨씬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도꼬마리는 모두 열매를 기억하지, 꽃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암꽃 수꽃이 따로 있지만 한 그루에 있고 풍매화이므로 화려한 꽃잎으로 두드러질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시라고 부르는 돌기가 가득한 열매의 가장 겉껍질 속에는 다시 2개씩의 작은 열매가 들어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두 열매 속 씨앗의 발아 시기가 같지 않다는 것인데 그 중 하나는 다소 작고 종피도 두껍습니다. 이 씨앗은 먼저 발아한 새싹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기다림의 미덕이 돋보이는 열매입니다.

열매들은 제각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로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합니다. 몸을 가볍게 하여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새에게 먹혀 배설물에 섞이기도 합니다. 도꼬마리처럼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붙어 옮겨지는 씨앗에는 앞선 열매들이 같지 못한 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동물들의 이동 거리상에 있으므로 열매가 붙는 곳과 떨어지는 곳의 환경이 비슷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엄마 도꼬마리가 살았던 곳, 즉 이 식물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에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여정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완벽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바람에 날려 우연을 기다리는 종자보다는 훨씬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늦은 가을 들녘에서 가을 햇살을 즐기며 한 나절쯤은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꼬마리처럼 몸에 묻어 옮겨지는 열매더라도, 가시를 가진 것, 진득찰이나 주름조개풀처럼 끈끈이를 가진 것, 도깨비바늘처럼 긴 낚시 갈고리를 가진 것 등을 찾아서 각기 가진 개성있는 방법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정 심심하면 입고 있던 스웨터 하나 걸어 놓고 과녁 맞추기 놀이를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매직테이프라고 하던가. 서로 까칠거리는 두면을 만들어 붙기도 떼기도 쉽게 만드는 테이프도 바로 식물의 이런 달라붙는 특성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니 누가 알겠습니까. 이렇게 가을을 보내다보면 인생을 바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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