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지음 창비 발행·8,500원
시인 나희덕(38)씨는 우리 시를 읽고 해석한 단정한 에세이에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매혹적인 제목을 달았다. 지나간 일들이 빨강과 파랑의 대립처럼 느껴져서 그 사이에 있는 '보랏빛의 균형감각'에 끌렸다고 했다. 이 감각으로 그는 첨단을 노래한 시인 김수영에게서 '휴식'과 '정지'를 발견하고('첨단의 노래와 정지의 미 사이에서'), 장석남 시인과의 대화에서 현대사회의 소요 속에 존재의 낮은 수런거림으로서의 침묵을 끌어내는 것이 시인의 역할임을 역설한다.('소요 속의 침묵') 책머리에 밝혔듯 "첨단과 정지, 전통과 반전통, 물과 불 등 대립적 항목을 세워놓고 균형을 잡으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상처를 넘어서려는 치유력과 분열을 넘어서려는 역동성의 '보랏빛'은, 무엇보다 모성성과 가깝다. 자신의 시를 자리매김하는 말이기도 했던 '모성성'에 대해 그는 "결과적 부드러움이나 화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의 불화와 갈등의 과정에 대해서도 주목해 보는 게 마땅하다. 그런 '양면성'을 동반하지 않은 모성성이란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나 발견을 낳기는 어렵다"면서 "내게 있어 모성성은…현실의 '불모성'을 견디고 건너가기 위해 가까스로 마련한 다리"라고 말한다. 최정례 김혜순 김승희씨 등의 시에서 그가 발견한 '여성성' 또한 그렇다. 모든 혼돈과 고통을 단순화하지 않고 온몸으로 겪어내는 시, 거칠고 날카로운 소음을 통과하며 그것들과 싸워서 이른 작고 부드러운 파동과 호흡이 '모든 여성적인 글쓰기'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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