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측이 13일 오후 전격적으로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침'을 공개한 것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추가 파병 규모를 3,000명으로 제한하고 재건지원 부대를 중심으로 하라'는 지침의 내용을 미국측과의 협상에 앞서 사전 공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또 노 대통령이 11일 오전 통일·외교·안보 분야 장관회의에서 지침을 하달한 이후 이틀이 훨씬 지난 13일 오후에야 지침 내용이 발표됐다는 점에서 과연 그 사이에 정부 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일고 있다.지침 공개는 아무 예고도 없다가 13일 오후 6시가 돼서야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이는 부처간에 충분한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일부 관계자들에 의해 부랴부랴 공개 결정이 내려졌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전투병 위주의 파병을 희망하는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는 지침 내용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전날 이라크 나시리야에서의 테러 사건으로 치안 불안 상태가 극명하게 부각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연말 파병 방침을 세웠던 일본측이 이날 파병 연기를 언급했다는 점은 우리 정부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즉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제반 정세가 심각한 국면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측은 지침 공개를 통해 미국에 대해 '향후 협상에 호락호락 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의도에 대해선 청와대 내에서조차 "동맹관계인 미국을 북한처럼 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막후 협상을 활용해야지 협상 마지노선을 미리 공개해 미국을 허공에 뜨게 만드는 것은 향후 한미관계에서 우려할만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흔적도 뚜렷하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측은 전투병이라는 용어를 쓰려 하지 않는다"면서 "때문에 이라크 내 독자적 지역 담당을 상정하면서도 치안유지 임무를 배제하고 재건지원 병력과 경비병력으로 구분하는 것은 현실성과는 관계없이 국내 파병반대 세력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1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장관회의에서 내려진 노 대통령의 지침이 실제로는 그렇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게 아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침이 내려진 11일 오후 국방부측이 '전투병 위주의 안정화군'을 강도 높게 주장했다는 점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11일 장관회의에서 구체적인 파병안을 만들어 보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측이 이에 고무돼 다소 앞서나갔지만, 청와대측이 지침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틀 동안의 변화 상황을 담아 당초 내용을 수정·가공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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