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지음 마음산책 발행·1만2,000원
"이것은 종이 위에 씌어진 현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매일 헤아릴 수 없이 죽어가는 우리의 매 순간을 결정짓는 것입니다."(마르케스의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연설 중에서)
한 나라가 고통과 저항의 역사를 겪을 때 문학은 그 역경을 발언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일제 식민지와 1970, 80년대 독재체제를 지나온 우리 문학이 그러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현대사도 우리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식민통치와 군사독재를 경험했으며, 민주화의 분투와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불안과 혼돈의 그늘이 걷히지 않았다. 소설가 조용호(42·사진)씨의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은 중남미 아프리카 문학기행서다. 2001년과 2002년 페루, 칠레 등 중남미 각국과 모로코, 케냐 등 아프리카 곳곳을 기행하면서 맡은 문학의 향기를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담았다. 그의 문학기행은 서구의 명작 탐방이 아닌, 소외된 지대를 처음으로 돌아보았다는 데서 의미가 각별하다.
마르케스는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6대에 걸친 사랑의 비극의 역사에 콜롬비아 좌우익의 갈등, 미국 자본과 게릴라에 의한 시달림, 남미인은 물론 인류 전체의 고독을 비추어 놓았다. 조씨가 둘러본 콜롬비아는 내전과 다름없는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순박하고 낙천적이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말년을 보낸 해변 이슬라네그라로 간다. 햇볕이 전신을 애무하는 침실, 넓은 유리창 아래 환하게 펼쳐진 태평양, 해변가에 세워진 나무십자가 아래 네루다가 잠들어 있다. 그의 마지막 거처는 안온한 듯하지만 그의 시는 조국 칠레의 상처를 아프게 새기고 있다. '고통보다 넓은 공간은 없고,/ 피 흘리는 그 고통에 견줄 만한 우주는 없다.' 이사벨 아옌데가 소설 '영혼의 집'에 담았던 칠레의 비극적 현대사이기도 하다.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시체가 산처럼 쌓였던 수도 산티아고의 마포초 강은 30년이 지난 지금 기억을 잊은 듯 흐르고, 무자비하게 폭격당했던 대통령궁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프리카 기행은 중남미보다 힘들었다. 그곳 나라들은 좀더 예민하고 혼란스러웠으며, 한국에서 그곳 문학작품을 접하기도 쉽지 않아 낯설었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두 흔적, 상처받은 두 사람, 아직도 미련 있어.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세월이 가도'이다. 모로코의 항구 도시 카사블랑카는 영화의 낭만적 분위기와 달리 매연으로 가득한 우울한 곳이었고, 미로 같은 도시 페스는 지독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시인 무함마드 아―싸르기니는 "제3세계든 선진국이든, 시는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면서 보편적인 실존의 고뇌로 나아가야 한다"고 또렷하게 말한다. 케냐 작가 응구기, 시옹오가 소설 '아이야 울지 마라'에서 그렸던 조국의 갈등과 모순은 조씨가 찾아간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대로 서려 있었다. 조씨는 "울음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다"며 그 신음과 눈물을 문학으로 증언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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