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빨간 머리가 고집이 세대요."뮤지컬 배우 김선경의 검은 머리는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율 브린너 주연의 영화 '왕과 나'의 원작인 뮤지컬 '킹 앤 아이'(15일부터 내년 1월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태국의 왕을 가르치러 온 영국인 가정교사 애나 역을 맡았기 때문. 원작의 설정과 유사하게 보이기 위해 염색을 했고 파란색 칼라렌즈도 낄까 생각 중이다.
몽쿳 왕 역은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유명 탤런트 김석훈이 맡는다. 하지만 비중은 애나 역이 훨씬 크다. 2시간 45분에 이르는 공연 내내 연기, 춤, 노래는 물론 내레이션까지 해야 한다. "어찌나 대사가 많은지, 그 시대 여자들은 옷을 어떻게 입었길래 의상이 이런지…" 의상 무게만 15㎏이다.
"제가 표현하는 애나는 따뜻하고 얌전한 데보라 카보다 기가 세고, 리메이크 영화에 나온 침착한 조디 포스터보다는 다혈질이에요." 사실 이게 김선경의 진짜 성격에 가깝다. 털털하면서도 지기 싫어하는 점이 닮았다. 머리를 묶고 나오는 후배 김석훈에게 종종 "율 브린너처럼 머리를 밀면 좋겠네"라고 농담을 던지지만 김선경이 왕 역을 맡았으면 정말 머리를 밀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뮤지컬 '몽유도원도'에서 목을 혹사해 공연 직전 하차한 아픔을 딛고, 수녀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넌센스 잼보리'에서 천방지축형 로버트 앤 수녀로 변신해 주연보다 더 눈길을 끄는 조역으로 대성공을 거둔 일이 있다. "버리니까 관객들이 좋아하대요.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영화도 호러 역만 제의가 들어와요." 과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가 출연한 '신장개업'이나 '라이터를 켜라' 등의 영화를 보면 예전에도 심상치 않았다. 비련의 여주인공보다는 연기파 배우였다.
데뷔는 1991년이지만 98년 뮤지컬 '드라큐라'를 본격적인 연기생활의 시작으로 본다는 김선경의 요즘 연기를 볼 때마다 점점 관객을 끄는 힘이 느껴진다. 일류 배우와 보통 배우의 결정적 차이이기도 하다. 본인도 "관객이 만족하고 있는지 슬쩍 객석을 봐요"라고 실토한다.
'킹 앤 아이' 자랑도 잊지 않는다. "참 대사가 시적이에요. 고전 뮤지컬만의 매력이죠." 이국적 무대 위로 영국식 영어로 "쉘 위 단스?"(Shall we dance?)라는 말을 건네며 왕이 애나와 어설픈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인 '킹 앤 아이'에는 남경주 이혜경 류정한 등 쟁쟁한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물론 원작처럼 춤은 왕(김석훈)보다 애나(김선경)가 훨씬 능숙하다. (02)2005―0114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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