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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포르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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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포르노는 없다

입력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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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성 지음 인간사랑 발행·3만원

포르노는 위험하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단속하자는 얘기는 질릴 만큼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포르노는 무력하다. 아니, 없다. 무슨 소리냐고 발끈하거나 어리둥절할 이들에게 이 책 '포르노는 없다'를 권한다.

없다? 지은이 박종성(50·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은 제목의 뜻을 세 갈래로 설명한다. 첫째, 포르노다운 포르노는 없다. 둘째, 포르노의 제작과 유통은 불법이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포르노는 없다. 셋째, 진짜 없는지 한 번 찾아보자는 일종의 호객용 카피다.

'권력에 대한 복잡한 반감(反感)의 표현'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거칠다. 과격하고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핵심 메시지는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비겁한 가짜 포르노는 가라, 비린내 나는 날 것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진짜 하드코어 포르노가 나와라.

"포르노그라피의 원래 뜻은 '창녀의 초상'입니다. 권력의 허구와 기존 권위의 위선을 낱낱이 까발리는 정치성, 그 과격한 솔직성과 진지한 공격성이 포르노의 본질이지요. 프랑스 혁명 당시 지배계급의 못된 게으름과 패덕을 고발하는 계략으로 등장한 게 포르노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그런 진짜 포르노는 없습니다. 고작해야 '텔미썸씽'을 '털밑썸씽'으로 바꾸는 비루한 패러디의 어정쩡한 전략 뒤에 숨은 채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죠. 포르노는 성기와 성기의 충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허구, 왕의 응큼함, 대통령의 독한 갈증까지 서슴없이 폭로하고 우리들 자신의 이중성과 위선까지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은 포르노의 정치성, 특히 권력과의 긴장 관계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포르노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계략과 허구성을 질타하는 한편 가짜 포르노만 차고 넘치도록 놔두는 문예 종사자들의 직무유기를 비판한다. 이 책에는 분노가 묻어있다. 지은이의 어법은 당혹스러울 만큼 직설적이고 현란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같지 않은 권력에 항문을 들이대며 욕할 의지가 없다면 이젠 정말이지 '정치' 같은 말은 쓰지도 생각지도 말 일이다." "X 같은 권력이여, X 같은 권위여, 개구녕만도 못한 기성의 온갖 허접이여, 볼 테면 보라! 나의 육신은 너의 위세보다 한결 강하며 너의 허풍과 위선보다 한층 고결하노니 다 보았으면 온갖 점잖음 털고 그저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나 비켜달라."

이 책은 결코 포르노 예찬론이 아니다. 지은이가 촉구하는 것은 포르노 본연의 정치성 회복이다. "단속과 처벌을 피해 가리고 숨기며 뭉개버린 들뜬 육체와 미친 살덩어리의 모자이크가 아닌, 권력을 향한 불만과 그 복잡한 심성의 표출을 읽어내는 포르노"다.

포르노를 둘러싼 기존 담론을 검토해 각각의 한계와 상호 분기점을 드러냄에 있어 그가 분석하는 자료는 비디오와 영화 등 영상물, 미술작품, 시와 소설, 록과 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오지랖 넓은 종횡무진을 지은이 스스로는 '좌충우돌'이라고 표현한다. 급진적인 주장과 시각으로 씌어진 이 책에 대해 그는 "비록 혼자 떠들더라도 각주는 달면서 하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헤매는 중"이라며 "할 말이 많다 보니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10여권의 책을 썼다.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한국의 매춘' '정치와 영화' '정치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정치를 배반한다' '백정과 기생' 등 언뜻 한 줄기로 잡히지 않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지만, 언제나 관심의 초점은 권력의 본질이다. 뜬 구름 잡는 얘기나 무미건조한 거대담론은 입맛에 안 맞는다고 말한다. 대신 구체적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정치학이 그의 영토다. 그는 지금 '조선은 법가(法家)의 나라였는가'(가제)를 쓰고 있다. 조선이 500여 년간 세계 최장수 왕조로 버틸 수 있었던 힘으로 권력과 민중의 긴장 관계에 주목, '죄와 벌의 통치공학' 을 탐구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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