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이 제 모습을 찾는 걸 보니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 민족의 정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14일 오후 4년에 걸친 보수공사 준공식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는 경복궁 근정전을 기다리는 서예가 정도준(56)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근정전의 상량문을 직접 썼기 때문이다. 상량문은 조선시대 건물을 지을 때 집안의 내력과 축원, 건물을 지은 이들의 명단 등을 담아 대들보에 올려놓는 문서. 건물의 기록이기도 할 뿐더러 옛 사람들이 건물의 일부처럼 여겼다.
정씨가 이번에 다시 쓴 상량문은 3가지다. 133년 전 대원군 시절에 쓰인 두 문서를 그대로 복원하고 이번에 근정전을 보수하며 쓴 새 한글 문서를 추가했다. 원문을 처음 보았을 때 조선 사대부의 기품이 저절로 느껴졌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대표 궁궐인 경복궁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물인 근정전 상량문이라 심적 부담도 컸지만 육체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세가지 문서가 각각 10m의 엄청난 길이인데다 일부는 종이가 아닌 비단에 써야 했기 때문. 한 자 한 자 천천히 힘을 주지 않으면 글씨가 제대로 먹지 않았고 중간에 한 글자라도 틀리면 전부 새로 써야 했다. 석 줄을 쓰고 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더구나 붉은 비단은 국내 생산이 거의 중단돼 구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우리 궁에 중국산 비단을 올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씨가 궁의 글씨를 쓴 것은 1999년 창덕궁 진선문 현판부터. 경복궁의 흥례문과 유화문, 경회루, 근정문에도 그의 글씨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남 진주 촉석루의 현판을 쓴 아버지 정현복씨와 역시 여러 번 궁궐 건물의 글씨를 쓴 스승 김충현의 대를 이어 자랑스럽다.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도 문화재청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쓸 마음이다.
상량문은 언젠가 근정전을 다시 고칠 때 후세의 누군가가 열어볼 것이다. 다시는 타의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제 내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열릴 자신의 개인전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좀더 자랑스레 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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