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이율배반적 특검법 통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이율배반적 특검법 통과

입력
2003.11.14 00:00
0 0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조 속에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두 당의 협조에 힘입어 찬성의원 수가 3분의 2를 넘었다.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견해도 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재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거부권 행사 자체가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정치공방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였을 때 중요한 이유가 측근인 최도술씨의 금품수수 의혹이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으로서는 이 상황에서 특검법을 수용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특검법안이 진실규명을 위한 순수하고 떳떳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한나라당의 특검법안 제출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역공의 목적에서 제안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최돈웅 의원을 비롯하여 대선자금 수사에 핵심적인 수사대상 인물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비리 수사는 피하면서 대통령 측근의 비리의혹만을 문제 삼는 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이 하고 있는 대선자금 수사는 어쩌면 한국정치를 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개혁을 다짐하고 있는 각 정당이 진정으로 개혁을 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모두 검찰 수사에 협조하여야 한다. 이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서 우리 정치는 깨끗해져야 하고, 한 단계 성숙하여야 한다. 정치인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일상화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특검법 통과를 지켜보면서, 정치권의 개혁다짐은 대선자금 수사라는 태풍을 피하기 위한 호도책에 불과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공멸의 위기 속에서 색깔이 다른 정당끼리 공조하는 것을 보면 이번 특검법 통과는 생존을 위한 투쟁 차원에서 협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검찰이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사건에 대해 특검법을 통과시킨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일전불사의 투지를 엿보이게 한다.

특별검사제도는 원래 논란이 많은 제도이다.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 휘말려온 우리 검찰의 현실에서 설득력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특검제도가 오히려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점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특검제의 전통이 확립되지 못하고, 정치상황이 불안정한 우리 현실에서 특검제도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투쟁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지만 야당이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국회와 대통령의 대립상황은 상시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대통령에 비해 권력우위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장관 해임도 건의할 수 있고, 지금의 의석분포로 보아서는 대통령 탄핵 결의도 가능한 실정이다.

특검법 통과는 바로 이러한 권력우위의 한 예이다. 앞으로도 부패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가 다수당에 불리할 경우 언제든지 반대의혹을 제기하여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검찰을 무력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던 정치권의 주장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대선자금 수사로 인하여 총선준비 보다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자제되어야 할 권력을 방어수단으로써 무차별적으로 행사할 가능성도 많다. 한나라당에서 법무장관에 대한 해임건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궤도를 일탈한 권력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해결하여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재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박 상 기 연세대 법대 학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