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스타 강수연이 ‘송어’ 이후 3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엽기적 연쇄살인사건과 그 사건의 재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서클’에서. 170여 편 경력의 베테랑 촬영감독 박승배의 감독 데뷔작이다.강수연은 영화에 대해 “가벼운 코미디 영화들이 흥행이 되고 있는 요즘, 다소 무거운 소재의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소감을 피력했다는데, 올해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 등 일련의 묵직한 연쇄살인담이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둔지라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된다.
그에 반해 국가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ㆍ제작한 ‘여섯 개의 시선’의 개봉 전 약진이 퍽 인상적이다. 임순례(‘그녀의 무게’)에서 출발해 정재은(‘그 남자의 사정’) 여균동(‘대륙횡단’) 박진표(‘신비한 영어나라’) 박광수(‘얼굴값’)를 거쳐 박찬욱(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 이르는, 내로라하는 여섯 명의 ‘괜찮은’(?)은 감독들이 각자 제멋대로 빚어낸, 단연 주목할 만한 옴니버스 영화.
올 전주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이면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이 단편 묶음은 ‘인권’이라는 무거운 화두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데 성공한 감독들의 개성을 일별케 해준다.
영화는 따라서 골라보는 재미를 맘껏 선사한다. 각자의 취향, 지향 등에 따라 개별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선명히 갈릴 게 뻔하다. 개인적으로는 ‘…찬드라의 경우’가 가장 끌린다. 흔히 ‘B급 정서’에 물든(?) 것으로 얘기되는 박감독의 사회의식이 돋보이는데, 일체의 감상성을 배제하면서도 지나친 거리두기로 인한 싸늘한 냉소로 빠져들지 않는 균형감이 삼삼하다.
김문주라는 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을, 때론 영화적 재치까지 담아내면서 극히 덤덤하게 포착, 추적한 ‘대륙횡단’의 쿨함도, 영어라면 사죽을 못쓰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 한방 먹이는 ‘신비한 영어나라’의 통렬함도 그렇고. 그나 저나 이 정도 감독들이 동원되었으니, 영화가 ‘얼굴 값’은 해야 할 텐데….
한편 영화사 백두대간이 특별 기획한 ‘한 지붕 세 감독의 씨네 릴레이 두번째 주자’인 ‘칠판’은 이란 영화의 저력 및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케 해주는 문제작이다. 마흐말바프 큰딸 사미라는 당시 스무살에 불과했는데, 이 영화로 2000년 칸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다. 물론 사상 최연소 수상_그녀는 올해도 ‘오후 5시’로 또 한차례 그 상을 안았다_이다. 이쯤 되면 가히 ‘어린 거장’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분들은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듯. 어린 거장의 연출력도 연출력이지만, 심지어 사랑 내지 정사의 수단으로까지 활용되는 칠판의 그 다양한 용도에 말이다. 이 영화는 새삼 웅변한다. 영화는 그저 오락에 지나는 것만은 아니라고….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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