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제도가 보험이지만, 잃어버린 신체와 정신에 대한 보상을 완벽하게 보험금으로 '금액화' 하는 과정에는 분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례로 20대 직장인 A씨가 출근 길에 다른 자동차의 잘못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다고 치자. 과연 A씨가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일까. A씨는 교통사고 보험 분야에서 가장 흔하고도 분란이 많은 '대인배상' 보험의 경우다.자동차 보험은 크게 대인배상(다른 사람을 사망케 하거나 다치게 한 경우 손해를 배상하는 것), 대물배상(다른 사람의 재물을 파손하는 경우에 배상), 자기신체사고보험(보험 계약자 자신이 다치거나 죽은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자기신체 보험사고는 보험액이 정액화돼 있고, 대물배상도 물건의 파손 정도를 수치화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많지 않다.
그러나 대인배상은 보험사와 피해자간 피해액을 확정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곧잘 소송으로 이어진다. A씨의 경우도 간단치 않다.
일단 A씨나 A씨 가족은 가해차량의 운전자가 가입한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액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우선 교통사고 당시 A씨가 어느 정도 잘못을 했는지 비율(%)을 확정해야 하고, 다음으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경우 A씨가 벌 수 있는 수입(일실 수입)을 확정해야 하며, A씨의 장애 상태에 대한 진단과 치료비를 계산하고, 더 나아가 A씨가 식물인간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지까지 가늠해 배상액을 정해야 한다.
손해배상액 책정 기준은 보험사와 법원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피해자가 횡단보도 신호등의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뀌려 할 때 횡단보도로 뛰어들어 사고가 난 경우, 보험사는 피해자 과실을 50%로 인정해 피해액을 산정하지만, 법원은 피해자 과실을 20∼30%로 보는 추세다. 일실수입 계산법에서도 차이가 많다.
보험사는 샐러리맨을 제외한 자영업자나 자유소득업자에게는 일괄적으로 도시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한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측이 실제 수입에 대한 여러 입증자료 및 관련 업종의 표준소득률 등을 제출할 경우 인정해 주고 있다. 일실수입 계산법도 보험사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라이프니츠 방식을 이용하지만, 법원은 호프만 방식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에 산정액에 차이가 난다.
한 변호사는 "보험사는 치료비 지급액에서 회사측의 위로금과 심지어 직장을 다녔을 경우 들어가는 중식비, 교통비까지 빼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이 지난 달 한 영어강사의 교통사고 사건에서 보험사가 제시한 보험금 2억3,000만원보다 4배나 많은 9억원(이자 포함)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보험사와 법원의 기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인배상 보험보다는 덜하지만 자기신체사고 보험 소송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자신 소유의 자동차를 소유, 사용, 관리하던 중 당한 사고만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 등의 기준을 두고 해석이 나뉘기 때문이다.
법원은 자기신체사고 보험과 유사한 운전자 보험에 대한 판례에서 도로가 결빙돼 잠시 운전을 멈췄다가 히터로 질식사한 경우는 '운행중 사고'로 인정했지만, 술에 취해 잠을 자기 위한 공간으로 차를 사용했다가 질식사한 경우는 '운행중 사고'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자기신체사고 보험과 관련, 보험약관 자체가 무효라며 소송을 낸 경우도 있었다. 상법 제729조 등에 따라 자기신체 사고 보험 등을 포함한 인(人)보험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보험계약자나 보험수익자를 대신해 제3자에 대한 권리(대위권)를 행사할 수 없도록 돼있다.
즉 대인보험 소송 등에서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고 대신 도로관리가 제대로 안됐다며 관리책임이 있는 지자체 등에 손해액을 대신 받아 낼 수 있지만 자기신체사고 보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신체사고 보험의 약관에는 이런 법률의 취지와 반대로, '가해차량이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을 경우 이를 공제한다'는 조항이 있다. 사실상 대위권을 인정하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약관에 대해 유효 판례(2000다21833)를 만들었지만, 하급심인 대전지법은 해당 약관이 무효라고 판결(99가소314)했다. 대전지법은 대위권과 관련된 약관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또한 "사망이나 상해에 대한 의도가 없었다면 음주운전 또한 고의가 아닌 과실로 봐야 한다"며 '과실로 인한 사고에 관한 상법 732조의 2' 등을 기준으로 "음주운전 사고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약관도 무효"라고 밝혀 보험약관을 상법의 틀 안에서 조정하는 선례를 남겼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 보험소송 전문변호사들
보험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국내 법조계에는 보험이론도 없고 연구하는 사람도 극소수"라고 한탄한다. 단순히 보험사를 상대로 돈 몇 푼 더 받아내는 소송이 아니라, 보험사의 배상 체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 만한 전문가들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거대 기업인 보험사를 상대로 맞서는 개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보험소송 전문 변호사로는 '약관의 위법성'에 대한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박기억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대전지법으로부터 자기신체사고 보험약관에 대한 무효 판결을 받아냈고, 지금도 또 다른 약관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교통사고 보험 전문 변호사다. 한 변호사는 최근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자에게 협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홍석한 변호사, 보험회사에 근무한 경력을 기반으로 보험사측 소송을 많이 맡고 있는 임용수 변호사 등도 보험소송 전문 변호사로 꼽힌다.
/이진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