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특파원 리포트/부시 축출 선언한 세계의 "큰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특파원 리포트/부시 축출 선언한 세계의 "큰손"

입력
2003.11.14 00:00
0 0

국제 헤지펀드계의 큰 손 조지 소로스(74)가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의 막대한 자금이 향하는 곳은 이번엔 국제금융시장이 아니다. 미국의 선거판이 바로 세계 최고 갑부 중의 한 명인 소로스의 거금이 잠길 곳이다. 거액을 던져 그가 노리는 유일한 목표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낙선. 소로스는 2004년 미 대선에서 부시 현 대통령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거지가 될 때까지라도 돈 줄을 풀겠다고 선언했다.8월의 어느 날. 뉴욕 롱아일랜드 소로스의 저택에 6명의 낯 익은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를 비롯 제레미 로스너, 로버트 부어스틴, 칼 포프 등 민주당 선거 핵심 전략가들과 진보적 활동가 단체인 '함께 가는 미국'(American Coming Together·ACT)의 최고 책임자 스티브 로젠덜, 회장 엘런 맬컴이 그들이다. 그들을 하나로 묶은 끈은 바로 '부시 타도'였다.

이날 로젠덜은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과 접전이 예상되는 17개 주에서 민주당 선거운동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제안했고, 소로스는 ACT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으로 즉각 화답했다. 그는 또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에 대항할 새로운 진보적 연구소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설립 준비를 하고 있는 포데스타에게는 3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다. 부시 낙선 운동의 이론적·실천적 토대가 될 두 기관에 대한 소로스의 간접 투자인 셈이다.

소로스의 ACT 지원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다른 거부(巨富)들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다음날 소로스의 친구이자 미 3대 보험회사인 프로그레시브의 피터 루이스(69)회장이 ACT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고, 리얼네트워크스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로브 글래서가 200만 달러, 맥케이 패밀리 재단의 로브 맥케이 회장이 100만 달러 제공을 약속했다.

소로스의 민주당 선거 자금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로스는 10일 루이스 회장과 함께 자유주의 활동가 그룹인 '무브온 닷 오그(MoveOn.Org)'에 각각 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기약했다. 전날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뉴욕대에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빅 브라더식' 통치라고 맹비난했던 연설을 했을 당시 이 행사를 주관한 기관이 무브온 닷 오그다. 이로써 소로스가 부시를 쫓아내기 위해 약속한 돈은 총 1,850만 달러를 넘어섰다.

소로스는 지금 부시 대통령을 향해 '정권 교체(regime change)'의 독설을 뱉고 있다. 그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부시 축출은 내 인생의 중심 초점이며, 내년 대선은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싸움은 자신의 부와 인생을 걸고 하는 최대의 도박인 셈이다. 이 신문은 이를 "소로스의 깊은 주머니와 부시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그가 옛 소련 국가와 아프리카, 아시아에 집중했던 자선활동을 축소하고 미국 내로 발길을 돌린 것도 부시 낙선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헝가리 이민자 출신인 이 억만장자는 왜 부시에게 극단적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을까. 런던 경제스쿨(LSE)에서 세계적 석학 칼 포퍼 교수의 지도로 철학을 전공했던 그는 부시 대통령 아래의 미국은 세계의 위협적인 존재라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를 향해 적과 동지의 선택을 강요하는 부시 대통령은 그에게 극단주의자의 전형으로 비친다. 소로스는 부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신보수주의자들의 말 속에서 어린 시절 헝가리에서 보았던 "적들은 듣고 있다"는 나치의 구호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그 끔찍한 기억을 털어내기 위해, 세계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미국의 지도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그는 "내가 가진 돈을 모두 내 놓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로스는 네오콘(신보주의자)이 9·11 테러를 이전부터 가졌던 선제공격론과 세계 지배 아젠다를 진전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년 1월 출간할 '미국 패권의 거품'이란 저서를 통해 '오류로 가득찬,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을 맹공할 예정이다. 그는 무력이 아닌 투표로 부시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열린 사회와 국제적 협력을 주장하는 자신의 주장을 '소로스 독트린'이라고 부른다.

소로스 독트린에는 비판론이 따른다. 특히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의 반응은 아주 차갑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크리스틴 아이버슨 대변인은 "소로스가 규제되지 않은, 레이더 망 아래에서 번 어두운 돈으로 밝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아이러니"라고 반격했다. 아이버슨 대변인은 "소로스가 민주당을 통째로 샀다"고 비난했다.

보수적 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은 10일자 사설에서 "민주당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대통령 딘'은 딕 체니 부통령이 핼리버튼사에게 은혜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소로스씨에게 갚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