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의 손주가 며칠 전 수능시험을 보았습니다. 코흘리개이던 손주가 어느 새 의젓한 청년으로 자랐답니다. 18년 전 태어난 손주를 바라보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힘차게 울어대는 녀석을 안고 연신 싱글벙글했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제가 몸조리하던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아이는 대입 수시모집에 합격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합니다. 그런데 시험이 어려웠다고 풀이 죽어 있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시험이 쉬웠다고 즐거워하는 학생치고 점수 잘 나오는 것 못 봤다"며 저를 위로하더군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대학원에도 보낼 생각입니다.
당신은 누구 못지않게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강했습니다. 소작농이셨던 당신은 평생을 쪼들리면서도 억척스럽게 일해 저희 5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습니다. 농사라는 게 손품이 좀 많이 들어갑니까. 농번기면 당신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일손이 모자랐습니다. 농번기이던 어느 날 당신은 우리 5남매를 데리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바닥은 쩍쩍 벌어져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잡초는 모포기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습니다. 당신은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종일 잡초를 뽑았지요.
저희 5남매는 그런 당신을 도울 생각도 하지 않던 철부지였습니다. 산딸기를 입안이 빨갛게 물들도록 따 먹으며 뛰놀았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해 하면서도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호미 끝으로 논바닥을 찍어대며 "내 귀여운 것들, 학교를 마치게 해야 하는데…"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옆에서 잎담배 부스러기를 말아 피우며 "내 저것들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힘이 솟아. 반드시 사각모 한번 씌워 줄거여"라며 호탕하게 웃으셨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저희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습니다. 당신의 꿈을 이루신 것이지요. 나는 당신을 아버지에 앞서 의지의 표상으로 존경합니다. 제가 이 험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때문입니다.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당신이 살며시 다가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너희들은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하면 돼, 알갔지?" 아, 당신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저는 지금 아이에게 그런 말을 못하고 있거든요. 아버지, 당신의 딸을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용기를 주세요. 둘째 딸 미자 드림.
/김미자 ·경기 여주군 대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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