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중국 고대 동북 변강지구의 소수 민족 지방할거 정권이며 중원의 천자에 스스로를 신하국으로 칭하며 복속했다."옌볜(延邊)대 교수로 조선사연구회에서 활동하다가 정년 퇴임한 중국 역사학자 웨이즈민(劉子敏)씨는 15일 오전 10시 충북 충주 후렌드리호텔에서 열리는 '국내성 천도 2000주년 기념 고구려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의 '중국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상'이란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학술대회를 며칠 앞두고 "사정이 생겨 참석할 수 없다"고 대회를 주최한 백산학회(회장 신형식 이화여대 교수)에 통보해 왔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문제가 국내 역사학계의 초미의 관심이 된 이후 처음으로 중국 학자가 국내 학술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측 견해를 밝히려던 계획은 이렇게 무산됐다. 웨이 전 교수는 불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백산학회는 중국 당국이 학문적으로, 또 외교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족령'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신형식 이화여대 교수는 "웨이 전 교수의 논문은 중국의 고구려관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어 한·중 학자들이 토론할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웨이 전 교수가 백산학회에 미리 보낸 논문은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역 역사에 출현한 소수 민족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고구려가 역사적으로 중국 왕조에 신하국으로 복속한 사실을 사료를 근거로 시기별로 고찰하고 있다. 그는 고구려인의 조상인 동이(東夷)는 일찍이 상말(商末)·주초(周初) 때 중국에 예속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전국(戰國)시대에는 요동군, 한군현이 설치된 이후에는 현도군의 지배를 받았으며 남북조시대에는 삼국 중 백제와 신라보다 훨씬 예속성이 강한 신하국의 관계를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일주서(逸周書)에 등장하는 예인(穢人)은 부여의 조상일 것이고 고이(高夷)와 발인(發人)은 고구려인의 조상이며 낭이(浪夷)는 고조선 조상의 한 갈래이고 이들 민족은 모두 주(周) 천자의 경역 안에서 살았다.…주몽이 건국한 고구려국은 비록 한 나라이긴 하지만 여전히 한서 군현의 지배 아래 있었고 또 한(漢) 천자의 책봉을 받았으며 한 천자에 대해 신하라고 스스로를 불렀다.…고구려는 수도를 국내성(지금의 지안·集安)으로 옮겨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특히 강조할 점은 고구려는 복종과 반역을 반복했지만 복종할 때는 의연히 현도군 혹은 요동군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원의 천자에 칭신납공(稱臣納貢·신하를 칭하고 조공을 함)을 했다.'
웨이 전 교수는 이어 '(중국은) 진나라 이후 군현제를 직접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고 주변의 소수민족지구에 대해서는 책봉의 방법으로 간접 관할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이 같은 책봉 체제에도 두 가지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같은 번복지국(蕃服之國)이라도 내외의 구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번(內蕃)이란 중국 고유 영토에서 갈라져 나간 소수민족 정권이고 외번(外蕃)이란 중국 영토 이외의 속국(屬國)을 말한다. 동북아지구에서 볼 때 고구려는 응당 내번에 속하는 것이고 신라, 백제는 외번에 속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정토론자인 충북대 양기석 교수는 미리 공개한 토론 요지에서 '발표자의 견해는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한 작업인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며 '중국 당국의 시각을 대변한 견해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이어 후한서 동이전 등에 근거해 고구려가 한이나 남북조 시대에 계속 중국에 예속된 나라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상'(하마다 고사쿠 일본 규슈대 교수), '한국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상'(서영대 인하대 교수), '북한이 보는 고구려사'(신형식 교수), '동아시아 도성체제에 있어서의 고구려 장안성'(다나카 도시아키 일본 자하현립대 교수)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또 박진호 숙명여대 강사는 디지털 복원 기술을 이용해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릉의 원형을 복원해 보여준다. 참석자들은 '과연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인가'를 주제로 종합 토론도 벌일 예정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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