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스펀지'와 SBS 'TV장학회'의 표절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한 독립프로덕션이 표절 대상으로 거론된 일본 후지TV의 '트리비아의 샘(泉)' 포맷 사용 계약을 맺고 내년 초 MBC를 통해 방송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후지TV는 법적 대응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트리비아의 샘'은 매주 수요일 밤 9시에 방송되는 후지TV의 간판 오락 프로그램. 후지TV가 밝힌 기획 의도에 따르면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가 없지만 알아두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사소한 지식"을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 소개한 뒤 5명의 패널이 점수를 매기는 '잡학 버라이어티 쇼'다. 지난해부터 심야에 방송되다가 올 7월 황금시간대에 진출했고, 방송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돼 100만부 넘게 팔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8,9일 '스펀지'(토 오후6시40분)와 'TV장학회'(일 오후7시)가 첫 방송된 뒤 인터넷에는 "'트리비아의 샘'을 베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스펀지'는 지식검색 사이트에서 문제를 골라 감정단 50명에게 평가를 맡기고, 'TV장학회'는 퀴즈 형식에 상금을 장학금으로 쓰기는 하지만, 기상천외하고 잡다한 상식을 다룬다는 핵심 아이디어는 똑같다는 지적이다.
한편 '트리비아의 샘'의 포맷을 수입하려던 독립프로덕션 B2E는 유사 프로그램이 먼저 전파를 타 큰 낭패를 보게 됐다. B2E 관계자는 "3개월여에 걸친 지루한 협상 끝에 17일 후지TV 간부가 방한, 정식 계약하기로 돼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결국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추진한 우리만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후지TV가 어떤 형태로든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본다"며 "우리 회사가 입을 손해도 손해지만 나라 망신 아니냐"고 덧붙였다.
'스펀지'와 'TV장학회' 제작진은 표절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히 '스펀지' 제작진은 12일 밤 인터넷에 올린 반박문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의 구성 틀보다 어떤 아이템을 다루느냐"라며 "외형상 비슷해 보인다고 표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트리비아'는 신기하고 희한하고 그런 일이 정말 있었을까 싶은 소재를 다루는 반면, '스펀지'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정보가 될 만한 것을 다룬다"면서 "프로그램의 본질인 콘텐츠를 도용하지 않는 한 표절은 성립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범죄로서의 표절 여부는 좀더 따져 봐야겠지만 두 프로그램이 '트리비아의 샘'을 참고한 혐의가 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스펀지' 제작진의 주장도 표절 논란의 핵심을 벗어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아이디어와 포맷"이라면서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오락 프로의 핵심 지식에 해당하는 아이디어의 유사성을 무시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과 교수도 "'스펀지' 제작진의 주장은 요리에 토크를 결합한 프로그램에서 일본 요리 대신 한국 요리를 다루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일부러 베끼지 않았더라도 핵심 아이디어가 같다면 정당한 대가를 주고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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