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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司試 1,000명 시대 - 인간승리 윤권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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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司試 1,000명 시대 - 인간승리 윤권철씨

입력
2003.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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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중퇴 후 페인트공, 핸드백 공원, 택시운전, 신문배달…, 그리고 사시 합격.사법연수생 34기인 윤권철(33)씨의 고시 합격기는 파란만장한 삶의 파노라마다. 고향인 전남 신안군의 섬마을 임자도에서 가출했던 때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어려운 가정형편과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 겹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험난했다. 철모르는 청소년기, 부모 밑에서 투정부릴 그 나이에 윤씨는 광주에서 페인트공, 성남에서 핸드백 공원으로 홀로 커야했다. 그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89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내일은 태양이 뜰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야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윤씨는 신문보급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새벽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공부, 저녁에는 청계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주독야경(晝讀夜耕)'의 생활 끝에 93년 한양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생계는 여전히 혼자의 몫. 신문배달, 오토바이 특송, 택시운전 등으로 밥벌이를 하며 계속 공부했고, 결국 지난해 사시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었다. "사시 합격은 과정이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도 합격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연수원 분위기는 온통 판·검사 임용에만 매달린 상황이었고 그 역시 임관을 바라는 자신을 돌아봤지만, 도대체 임관을 바라는 이유를 따져보면 답이 없었다고.

그는 아직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연수원 생활도 또 하나의 개척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홀로 자신의 길을 닦아왔듯, 미래도 자신의 힘으로 열어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돕고 싶어요. 교회의 십일조처럼 사건 10건 중 한 건은 무료변론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그중 하나죠."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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