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억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한 '투헤븐' 뮤직비디오가 조성모의 인기로 이어지면서 호화 뮤직비디오는 성공의 열쇠처럼 여겨졌다. 2000년 7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조성모의 '아시나요'는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의 정점을 이뤘다. 하지만 초호화 캐스팅에 수억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뮤직비디오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다. 불황으로 음반시장 규모가 줄면서 발랄한 아이디어를 녹여낸 저예산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김진표의 '악으로'는 비가 쏟아지는 배경과 노래의 느낌이 잘 조화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The Gold의 '2년 2개월', 서울역 뒷골목을 찍어 자두의 B급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 '김밥' 등도 적은 예산으로 노래의 특징을 잘 살려내 노래의 인기에 한 몫을 했다.
뮤직비디오 자체가 독립된 작품으로 인기를 끌던 때와 달리 아이디어를 동원해 가수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도 뮤직비디오의 역할이다. 빅마마의 'Break Away'는 외모 지상주의와 립싱크로 비틀린 가요계의 현실을 꼬집으며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노래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빅마마의 컨셉을 제대로 담아냈다. 유행에 민감하고 사랑스러운 세븐의 이미지도 '와줘'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 냈다. 원룸에 혼자 살며 힐리스를 타고 쇼핑을 하고, 헤어진 여자친구 사진을 집에 걸어 놓고, 그녀의 생일날 케이크와 와인을 준비해 홀로 축하하는 로맨티스트 이미지를 녹였다.
예산 부족으로 대형 뮤직비디오 제작 자체가 어려워지고, CF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겸업하는 스타 감독들의 활약이 주춤해지면서 전문 감독이 아닌 아마추어가 만드는 뮤직비디오도 늘어나고 있다. 'With Me'(휘성) '와줘'(세븐) 'Break Away'(빅마마) 등의 뮤직비디오는 이들의 소속사인 엠보트의 김경진 사장이 찍었다. 지누와 정우성이 각각 원타임과 god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찍었고, 린킨파크의 DJ 조한이 스스로 뮤직비디오를 찍듯, 영상의 홍수 속에 자라난 요즘 세대에게 뮤직비디오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승부수를 던지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게 가요계의 중론이다. 음악전문방송 m.net의 정형진 PD는 "뮤직비디오가 절대적 역할을 하던 때는 지났다"고 말한다. "좋지 않은 음악을 특이한 뮤직비디오로 포장해 팔아 먹는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아요. 다만 좋은 음악의 감동을 영상으로 증폭시키는 판촉물로서의 역할로 회귀하는 구조 조정기입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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