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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검은 손" 대신 "아름다운 손"을

입력
2003.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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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변의 모래성은 아무리 수려하고 훌륭하게 지어졌다 해도 파도가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바위 언덕이나 성곽 위에 지어진 성채는 견고한 기초 때문에 천년의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켜낸다.이러한 경우는 사회적 현상에도 적용된다. 비록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검은 돈'과 관련된 정치 스캔들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이것은 아직도 민주주의의 구심이 되는 엄격한 도덕성과 성숙된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결과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에서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뜻 깊고 의식 있는 국민들이 나라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가 부도덕한 정치권의 '검은 돈'의 진흙탕 싸움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일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잃고 절망하고 있는 이때, 어둠 속에 희망의 빛을 제공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향토 중소기업가 태양(주)의 송금조 회장은 지난 달 현금 305억원을 기부한 것도 모자라, 또 다시 부산대학의 장학재단을 위해 1,000억원을 출연해서 기부 문화의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지난해 4월 자신의 사재 3,000억원으로 교육재단을 설립했던 이종환 회장도 내년까지 이 재단을 6,000억 규모로 늘려 세계 최대 장학재단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진 어패럴 이상철 회장도 교통사고로 먼저 간 딸을 기리기 위해 사재 50억원을 털어 구립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이들에게서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손이 부도덕한 '검은 손'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주는 '아름다운 손'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신문은 이들에 대한 기사를 정치권의 '검은 비자금' 사건 대신 1면 톱으로 취급하지 못했을까. 불법상속과 정치적 보험을 위한 '검은 돈'의 거래 대신, 기부 문화의 불씨가 요원의 불길로 일어날 때 건강한 선진사회는 그만큼 앞당겨질 것이다. 탐욕적인 이해 관계로 지불되는 비자금은 죄의식과 함께 망각의 물결에 씻겨 가지만, 장학 기금과 같이 인간을 개발하는 교육사업에 투자한 돈은 비자금같은 먹구름을 쫓는 결과를 가져오는 등 시대를 초월해서 그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태 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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