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초 방송가에 이단아가 나타났다. 개그맨 남희석의 매니저라는 20대 청년이 '감히' PD등 방송국 연예프로 제작자들에게 반항(?)을 하고 나선 것이다. "회당 50만원으로는 출연시킬 수 없다" "1주일 전에 약속 안 하면 인터뷰를 할 수 없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프로를 이런 방향으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간섭성 제안까지. 방송국 관계자들은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출연 프로그램과 날자를 정해 통보하면 두말없이 뛰어 나오던 일방통행식 관행에 대한 도전이니.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매니저 소속의 개그맨 몸값은 10배 이상 뛰어 오르고, 방송국이 오히려 스타를 모시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역전상황이 전개되고 말았다. 김해성(33) (주)지·패밀리 엔터테인먼트 대표. 그는 지난해 개그맨들로만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남희석 이휘재 이혁재가 그와 손을 잡은 후 떴고, 현재 유재석 홍록기 김한석 신정환 조혜련 송은이 등이 이 회사에 몸담고 있다. 야인시대의 이원종(구마적) 이재용(미와 형사)과 영화 황산벌의 '거시기'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이문식 등 실력파 연기자들도 한 식구이다. "'스타메이커'는 김인식 감독(10월 16일자) 같은 분을 쓰는 데 아닙니까. 제가 어디 인물이 되나요." 김대표는 평소 특별히 존경해 온 프로야구 김인식 감독과 같은 기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데 놀라 손사래를 쳤다.하지만 5년여의 길지 않은 경력에도 불구, 그 동안의 성과와 일에 대한 열정, 추진력은 누구로부터도 인정받는 당당한 프로였다. "논리상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관철시켜야 하고 거기서 희열을 느끼는 성격이거든요." 그러한 김해성 대표를 주위에서는 개그맨의 위상을 올려 놓은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배우 탤런트나 가수에 비해 열등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시 되던 개그맨들을 방송의 중심에 진입시켰고 이들에게도 각자의 매니저, 코디네이터, 승용차를 제공했다.
개그맨의 캐릭터를 개발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인물들을 묶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내는 게 그의 남다른 능력이다. "개그맨은 모두가 방송국 공채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재능이 있죠. 어떻게 그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느냐 하는 게 문제죠. 방송국 분위기도 다 같지 않아 남희석은 SBS, 유재석은 KBS가 잘 맞습니다. 때문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줘야 합니다."
김대표가 개그맨 매니저로 들어선 것은 남희석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스무 살부터 7년간 무려 40개국을 돌아다니며 옷 장사를 하다가 97년 결혼식에서 남희석을 만난 것. 먼저 매니저를 시작한 친구가 사회자로 데려온 남희석은 우연치 않게 신부와 한 동네(충남 웅천) 출신이기도 했다. 신부측 하객으로 참석한 어른들을 통해 이를 알게 된 둘은 곧바로 가까운 술친구가 되었다.
아내의 임신과 함께 외국 떠돌이 생활을 정리한 김대표는 대신 곧 태어날 2세를 위해 '그럴 듯 한' 직업을 찾던 중 일단 매니지먼트 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1집을 발표한 가수 디바의 로드매니저를 했으나 만족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개그맨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일본에 머물면서 본 개그맨들과의 위상과는 너무나 차이가 컸다. 일본에서는 개그맨이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TV의 오락프로 날씨와 토막뉴스까지 다양한 분야를 뛰며 연예인 소득랭킹 10위 내에 4∼5명씩 들어가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웃기지만 좀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는 남희석을 데리고 회사를 만들었다. "밖에서 웃겨야 방송에서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24시간 남을 웃기려 들고, 말 한마디마다 재치가 번뜩이는 남희석이야말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남희석은 "무슨 매니저가 필요하냐"고 귀찮아 했지만 "곧 개그맨 시대가 온다"며 설득했다.
개그맨들에게는 계약금이라는 개념이 없던 당시에 남희석이 내세운 조건은 단순히 '비싼 술집에 가서 열 번만 코 삐뚤어지게 사달라'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남희석은 얼마 안돼 유행어 '빠라바라빠라밤'을 터뜨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대표는 남희석의 인기를 더 높일 방법을 연구하다 제대 후 라디오 프로만 진행하던 이휘재를 파트너로 붙이는 시도를 했다.
대부분의 일본 오락 프로들을 개그맨 두 명이 진행하는 것에 착안, '말 잘하는' 남희석과 '얼굴 잘생긴' 이휘재를 묶으면 환상적인 콤비가 된다고 계산한 것. 그리고 둘이 각각 한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선택을 기다리는 SBS의 주말프로 '멋진 만남'의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반응은 즉각 나타나 같은 시간에 18%였던 시청률이 3주만에 25%이상으로 점프했다. 남희석과 이휘재의 '멋진 만남'이 바탕이 된 결과였다.
이후 또 하나 만든 콤비가 염경환과 지상열의 '클놈'. 한 겨울에 물 속에 들어가기 등 소위 자학개그로 눈길을 끈 클놈은 공격적인 토크가 무기였다. 그러나 여과된 말만 가능하다는 공중파의 제약은 이들의 끼를 발동부터 억제하는 족쇄.
김대표는 수위를 의식해 미리부터 위축되도록 할 게 아니라 일단 방청객만 대상으로 마음껏 웃기게 하고 내용을 편집할 것을 제안, 날개를 달아줬다.
이후 남희석 이휘재가 MC를 맡은 KBS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 메뚜기 탈을 쓰고 나오던 유재석을 발탁했고, 유재석은 지·패밀리 멤버가 된 후 이 프로에서 대학교에 찾아가 퀴즈를 푸는 코너를 남희석 매니저 출신인 김종석과 함께 맡아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대표는 지난해 50억원이란 높은 매출을 올렸지만 소속 연예인과의 수입배분에서는 줄곧 7:3을 고집한다. 일반적으로 톱스타를 보유하면 투자유치와 소속 연예인 끼워팔기에 이점이 있어 그들에게서는 한 푼도 떼지 않는 10:0의 계약도 감수하지만 '아무리 스타라 해도 30%를 떼어야 회사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희석 이휘재가 지난해 지·패밀리를 떠난데는 그런 이유도 한몫했다. 김대표는 "자기들도 사장을 해야겠다는데 한 회사에 사장이 여러 명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라며 웃고는 그래도 회사가 큰 것은 맨파워 때문에 가능했다며 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신인들을 톱스타에 붙여 출연시키는 방법으로 키움으로써 지·패밀리 개그맨의 방송노출 빈도가 28%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
남희석이 이휘재를 끌어주고, 그들 덕분에 유재석이 회당 700만원을 받으며 1년에 1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최고 개그맨으로 성장하고, 그 다음 송은이도 회사가 외주를 받아 제작한 KBS 토크쇼 '이(휘재) 유(재석) 있는 밤'에 MC로 합류해 스타가 된 것이 그 예이다. 지·패밀리의 운영과 전략은 개그맨을 주축으로 2,000명의 연예인을 보유한 일본 요시모토 흥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김대표는 사업을 개그맨 매니지먼트에서 벗어나 탤런트, 가수 매니지먼트와 영화제작등의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이재용씨를 원장으로한 연기학원을 설립했고 SBS 드라마 '때려'에 출연중인 조혜련의 드라마 출연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이원종과 이재용은 야인시대 출연 후 깡패와 일본형사의 강한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곧바로 KBS 일일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 출연시켰다.
중국진출의 원대한 포부도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 홍콩배우 바람이 불었다가 오래가지 않았듯이 지금의 한류열풍도 그럴 것으로 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전략중의 하나는 중국 여가수를 포함한 3인조 그룹 출범. 보아의 일본진출 성공은 일본어를 잘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중시, 일단 중국가수를 국내에 데려와 띄운 후 한국 가수 2명을 붙여 중국에 역수출할 계획이다.
유석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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