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모델 사진이 보인다. 사진 앞에 걸린 비닐을 살짝 들쳐본다. 라크르와의 치마가 올라가면 비닐 뒤편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 모델이, 그 밑에 역시 나체인 남자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모델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사진이 드러난다.화가 배준성(36)씨의 '크리스찬 라크르와 & 배준성' 전에 나온 '화가의 옷'이란 작품이다. 배씨는 사진과 회화를 하나로 결합한 이른바 '퓨전 회화'로 유명한 젊은 작가다. 사진 위에 비닐 그림을 덧씌우는 것이다. '화가의 옷'의 경우 남녀 모델의 누드 사진을 찍은 뒤 비닐에 라크르와의 의상을 세밀하게 아크릴화로 그린다. 사진에 비닐 그림을 얹어놓으면 영락없는 패션 사진처럼 보이지만, 비닐을 들치면 숨은 그림찾기처럼 뒤에 숨은 모델들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배씨는 그간 다비드, 앵그르, 세잔느 같은 대가들의 원화에 비닐 그림을 덧씌운 작품으로 해외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완매되고,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 받아 왔다. 훔쳐보기, 환상, 유머 등 키치적 요소를 순수예술인 회화, 사진과 교묘하게 결합한다. 이번 전시는 대림미술관이 2년 전 기획해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 열리게 됐다. 라크르와의 진짜 의상과 배씨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뉴욕과 하와이 등지의 순회전도 예정돼 있다. 사진의 모델들은 연극배우, 큐레이터 등 작가의 지인들. 관객은 비닐을 들쳐보며 모델들의 누드도 감상할 수 있다. 내년 1월18일까지 대림미술관. (02)720―0667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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