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岩) 예비역 준장이 10일 오후 10시2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1921년 함북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옌지(延吉) 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43년 만주 간도특설대에 입대, 44년 건국동맹 군사분맹에 가입했다. 한국전쟁 당시 8사단 수색대장과 동해유격대장, 육군 특수부대장을 지내며 횡성과 영천 전투에서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특수공작을 위해 입북했다 체포됐으나 탈출했다.
60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을 지내던 고인은 5·16 직후 혁명검찰부장직을 맡아 장도영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반혁명 음모 혐의로 구속, 군사재판에 회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63년 2월 혁명검찰부장을 그만 두고 준장으로 예편하자마자 그 자신이 오히려 반혁명 혐의로 구속돼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68년 반공잡지인 월간 '자유'를 창간한 고인은 2002년 338호가 나올 때까지 발행인으로 일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겸희(72)씨와 장남 청권(육군 대령)씨, 차남 청인(한경대 조경학과 교수)씨 등 2남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02)3410-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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