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사정이 무서워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SK 손길승 회장의 발언으로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건네진 SK비자금 100억원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대선 당시 비자금 수수에 관계했던 장본인들은 12일 손 회장의 발언에 대해 "터무니 없다"며 발끈했다. 김영일 전 사무총장은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최돈웅 의원은 "SK측에서 먼저 '얼마면 좋겠느냐'고 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일선에 총알이 떨어져 당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한 적은 있다"면서도 "액수를 지정하거나 표적사정을 얘기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손 회장의 주장에 최 의원의 해명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문다.지금까지 검찰수사와 관련자 증언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SK에 돈을 요구한 시점은 작년 10월이다. 하지만 당 관계자들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댄다.
지난해 10월 중순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35%대를 오르내리며 정몽준·노무현 후보를 제친 부동의 1위였다. 당선 가능성에선 70%를 넘는 압도적 우세였다. '이회창 대세론'이 굳어지던 때였고, 돈이 몰려들던 시점이다. 1997년 대선 패배 후 5년만에 당사가 아닌 대형 체육관에서 후원회를 열었던 것이 10월29일의 일이다. 당 관계자의 말처럼 "4년6개월 굶다가 막판 들어 반짝 했다"는 바로 그 때다.
그런데도 한 관계자는 "당시 중앙당에선 '맨입 선거운동도 가능하다'며 돈을 보내주지 않았고 지구당에선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운동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일선에 총알이 떨어져 대단히 어려운 상황"(최 의원)이라며 "표적사정을 할 수도 있다"(손 회장)는 협박을 통해 SK측에 10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리해서 돈을 받아낸 목적과 용처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다른 곳으로의 유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3의 인물'이 주도했을 가능성도 떠오른다. 최 의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표적사정 발언을 누가 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손 회장과는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 다만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과 10월 이후 몇 차례 통화했다"고 말했다. 반면 손 회장은 "한나라당이 자꾸 우리 그룹을 못살게 굴어 확인해보니 돈을 더 내라는 거였다. 대선 때 할당된 양이라며 100억원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에게 표적사정 운운하며 100억원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인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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