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SK그룹 회장이 "한나라당 집권 후 표적사정이 무서워 대선 때 100억원을 주지않을 수 없었고, SK가 당한 것은 방패막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파문을 낳고 있다. 사내 교육과정에서 한 일방적 주장이라고 해도 파장이 작지 않다. 손 회장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양 떠드는 게 옳으냐를 떠나, 음습한 거래의 한 단면이 수면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손 회장은 "정치자금은 여당 60%, 야당 40% 정도로 나눠주는 게 관례인데 김대중 정권 때 민주당에 140억원, 한나라당에 8억원 밖에 가지 않았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이 못살게 굴어 확인해보니 돈을 더 내라는 것이었고, 집권하면 표적사정을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안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정치권이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갔다는 주장은 반드시 사실이 규명돼야 한다. 사실이라면 정경유착과는 차원이 또 다른 범죄행위다. 대선과정에서 집권을 확신한 한나라당이 협박을 했다면 누가 어떤 경로로 했는지가 우선 밝혀져야 한다. 또 본인의 얘기대로 6대 4의 관행을 벗어나 집권당에 일방적으로 정치자금을 준 경위도 해명돼야 한다. 대선 뒤 당선 축하금조로 최도술씨에게 11억원을 주는 과정에서도 협박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손 회장이 스스로 실체를 털어놓거나,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대목들이다.
우리는 난마처럼 얽힌 대선자금정국은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 및 참회를 거쳐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전향적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석고대죄뿐 아니라 기업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손 회장은 변명에 앞서 정경유착의 장본인으로서 잘못된 과거를 소상히 자백한 뒤,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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