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기자들의 자유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처럼 그 시절에도 몇몇 보수 신문의 눈 밖에 나 있던 그는 사주에 대한 기자들의 독립성을 북돋움으로써 그 기자들이 쓰는 기사의 논조가 자신에게 덜 적대적이 되기를 바랐던 듯하다. 그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인식이 흐릿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언론의 자유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반만 옳다. 다시 말해 완전히 틀렸다. 언론의 자유는 물론 언론사주(만)의 자유가 아니지만, 기자들(만)의 자유도 아니다. 우리 헌법 제21조가 명확히 규정하고 있듯, 언론 자유의 향유자는 모든 국민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이 태어났을 때, 신문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저널리즘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영어의 Freedom of speech나 독일어의 Redefreiheit라는 말이 또렷이 드러내듯, 언론의 자유는 말의 자유다. 다만, 근대 이후 신문을 비롯한 대중 인쇄매체가 중요한 언로가 됨에 따라, 언론의 자유가 흔히 언론출판의 자유로 묶여 거론되며 저널리즘의 자유인 듯 좁게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의 언론자유 상황은 어떤가? 언론의 자유를 정치권력과의 맞버팀 속에서 소극적으로 해석할 때, 한국 땅에 넘쳐나는 것이 언론의 자유다. 누구라도 신체적 위협을 느끼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대통령을 조롱할 수 있고, 심지어 쿠데타를 부추기는 듯한 선동문을 제 잡지에 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적극적 구성원리로 이해할 때, 다시 말해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로 이해할 때, 한국 사회에 언론의 자유는 크게 부족하다. 그것은 총량 과잉 상태의 언론자유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옛 사회주의 체제를 자유사회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그 사회에서 자유라는 재화가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렸던 핵심 당원들에게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것이 고르게 분배됐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언론의 자유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우선 시민사회 일반보다 언론기업에 너무 쏠려 있다. 게다가 이 언론사들 다수는 정치적으로 짙게 오염된 언론당들이다. 이 언론당 당원들은, 언론당으로부터 후보 당원증을 발급받은 일부 지식인들과 더불어, 일반 시민에 견주어 훨씬 더 큰 적극적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어느 사회에서든 한 개인이 지닌 발언권의 양은 그가 누리는 권력의 양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대 정치의 한 측면은 미디어크라시(미디어 지배)다. 발언권을 과점함으로써 언론당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었다.
다음, 언론의 자유는 그 언론당들 가운데서도 거대 자본의 밑받침을 받는 몇몇 보수 신문당에 쏠려 있다. 쌍방향 매체라는 찬사를 받는 인터넷도 아직은 이 비대 보수 신문들이 설정하는 의제의 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비대 신문사에서 사주와 기자들의 이해는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의 자유라고 강변하며 사주와 기자들의 긴장 가능성에 주목했을 때, 그는 몰라서 그랬든 일부러 그랬든 순진했던 셈이다. 기자들이 점차 중산층 이상에서 충원되고 그들이 소속 언론사의 경제적·상징적 재산을 나누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언론사주와 기자들의 갈등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한 해외망명객의 조국 방문에 즈음해 국가보안법 문제가 개인의 처신 문제로 변질돼 버린 것이나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난데없이 '귀족'의 작위가 내려진 것도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고르게 분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론 개혁이라는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재화의 재분배를 모색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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