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수사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재계가 연말 정기인사는 물론 내년 투자 및 경영계획 수립을 유보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해외투자가 무산되고, 차입금의 만기연장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전국경제연합회 현명관 부회장은 10일 대검찰청을 방문, 대선 자금 수사영향으로 기업들이 내년 경영계획 수립은 물론 해외투자 및 외국기업과의 합작과 해외차입금의 만기연장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수사를 하루빨리 마무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현 부회장은 "기업들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겠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검찰도 일반적인 추측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기업 얘기를 신뢰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이 비자금 수사의 조속한 마무리를 요청한 것은 재계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S그룹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비자금수사의 덫에 걸려 본연의 경영활동보다 비자금 유탄에 맞지 않기 위한 생존경영에 주력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부 그룹들은 외환위기이후 구축해온 경영투명성 및 지배구조 선진화가 이제 겨우 인정 받으려는 순간에 비자금수사가 터져 자칫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은 1995년 말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수사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당시 30대 재벌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해외에서 한국기업의 경영 투명성 문제가 단골메뉴로 거론되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연말 인사 및 내년 경영계획 수립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C그룹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내년 투자 및 매출, 수출 목표 등 경영계획을 마무리한 후 내달 중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할 방침이었지만, 비자금 수사파문과 정치권의 요동으로 이를 유보했다"고 말했다. H그룹관계자도 "내년 총선 때까지 경영에 미칠 변수가 워낙 많아 핵심부문을 제외하고 불요불급한 투자는 전면 유보 내지 동결할 방침"이라며 "신규채용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불법, 편법 여부와 상관없이 기업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재계전체가 잘못한 것처럼 오인돼 기업이미지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를 유보할 경우 경기침체 장기화, 청년실업난 해소 차질등의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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