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미국의 철강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WTO 협정 위반으로 판정한 것은 지난 7월 1심에 해당하는 분쟁패널의 결정을 재확인한 것으로 자국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전횡을 휘둘러 온 미국에 대한 분명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대규모 보복전 우려
이번 WTO의 결정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메이저 무역주체 간의 무역전쟁은 앞으로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년간 계속돼 온 국제 철강 분쟁에서 승리한 EU와 한국 일본 중국 스위스 노르웨이 브라질 뉴질랜드 등 8개 공동제소국은 합법적인 보복이 가능해졌다.
EU는 이미 미국의 대 EU 수출품 가운데 22억 달러 규모에 대해 고율의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하고 품목 선정도 마친 데다 "WTO가 11월 말 상소기구 보고서를 승인하면 5일 이내에 보복을 시작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기까지 밝히고 나섰다.
여기에 일본도 대미 무역사상 처음으로 1억 2,000만 달러의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며 다른 제소국들도 보복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국제적인 무역 전면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EU는 수출업체에 대한 미국정부의 세제 지원조치에 대해, 미국은 EU의 GM(유전자조작) 농산물 금수조치에 대해 각각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철강 분쟁이 전선을 더욱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시의 고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3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를 철회하든지 무역보복을 감수하든지 해야 하는 처지에 서 있다. 미 무역대표부는 10일 "WTO의 최종 판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백악관측은 "부시 대통령이 세이프가드를 유지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부시에게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부시가 세이프가드를 철회한다면 그 동안 고관세로 수혜를 입어온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같은 철강산업이 몰려 있는 주의 여론이 급속히 나빠질 수 있다.
반대로 부시가 세이프가드를 고집할 경우 그 동안 높은 철강 가격에 불만을 표시해 온 자동차 등 대규모 철강 수요업계의 항의에 부딪힐 게 뻔하다. 특히 EU가 준비 중인 보복관세 부과 품목에는 담배, 오렌지, 제지 등 미국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부동층 주)에서 생산된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 부시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사태가 미 의회 내 반WTO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들어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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