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해발 1,500m 높이에 자리잡은 묘향대. 스님 혼자 지키는 이 암자에 올 여름 수상한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제단에 놓인 사과, 부엌이나 벽장에 넣어둔 먹을거리가 자꾸 없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장군'의 짓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든 반달가슴곰 '장군'은 스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암자를 뒤져 설탕을 봉지째 훔쳐 먹고, 샘물에 담가 놓은 김치통을 열어 김치를 꺼내 먹기도 했다.SBS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을 위해 2001년 9월 방사된 '장군'과 '반돌'의 성장기를 담은 2부작 다큐멘터리 '2003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 가슴곰'(연출 유영석)을 15,16일 밤 10시55분 방송한다. 첫 동면까지의 모습을 담은 지난해 설 특집 방송에 이은 두 번째 보고서다.
첫 동면을 함께 보낸 장군과 반돌은 이제 각각 떨어져 살고 있다. 지난 겨울, 좀 소극적인 반돌은 지리산에 하나밖에 없는 참나무 굴을 찾아 편안하게 겨울잠을 잔 반면, 활달한 장군은 굴을 옮겨 다니며 제대로 자지 않았다.
두 번째 동면을 마친 장군과 반돌은 몸무게가 60㎏로, 1년 사이 두 배로 불었고 활동도 왕성해졌다. 특히 장군은 호기심이 많아 민가에 자주 출몰했다. 6월에는 산기슭의 양봉 꿀통을 건드리는가 하면, 꿀통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나무에 매달린 채 종일 꼼짝 못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장군이 다른 곰과 함께 나타났다는 것. 발신기 추적 결과 반돌은 다른 지역에 있었고, 나무에 찍힌 발자국도 하나는 장군 것(11㎝)보다 작은 7㎝였다. 그렇다면 장군이 드디어 짝을 만난 것일까? 제작진은 현장에서 채취한 곰털의 유전자 분석을 서울대 법의학과 이정빈 교수에게 의뢰했다. 만약 야생 암컷으로 밝혀질 경우 엄청난 사건이다. 장군의 짝짓기가 성공해 반달곰 복원을 한 발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영석 PD는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SBS가 2001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추진중인 지리산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고 있다. 유 PD는 "생생한 기록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자주 접촉하면 야생 적응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통상 야생동물 찍을 때처럼 먹이로 유인하는 일을 삼가고 한 번 촬영하면 상당 기간 사이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야생곰의 생태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면서 "이 기록을 토대로 보다 체계적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개그맨 신동엽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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