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청준(64·사진)씨의 자택에는 돌이 많다. 그는 "언제부턴가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곳의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오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울릉도 해안가의 검은 현무암, 멕시코 마야 유적지의 얼룩덜룩한 뱀 모양 자갈돌, 이스라엘 사해의 붉은 돌멩이…. 돌조각마다 잊을 수 없는 사람과의 추억이 배어 있다. 홍성원 김병익 김원일 등 문우와 함께 한 울릉도 항해와 멀미의 기억, 고혜선 교수와 함께 한 환상적 멕시코만 유람, 고우 김현과 함께 이스라엘 해변에서 보았던 오색 무지개 같은 것들이다.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현대문학 발행)에서 이씨는 이렇듯 돌 이야기와 나무와 강물 이야기 속에 그의 삶과 사유를 담았다.노모를 찾아가는 고향 나들이로 시작된 남행이 글벗들과, 지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길로 이어졌다. "같은 길이라도 세월이 흐르고 동행자가 바뀌면 경관도 세태도 함께 바뀐다. 같은 여행지의 새로운 발견이며 삶의 재발견이다."
길 여행과 함께 흘러온 세월과 변화의 물살은 쉼 없이 떠밀려가는 강물 같아, 때로 허망해진다. 이문구의 소설에서 보았던, 고우와 닮은 청청한 나무들, 애틋하게 작가를 기다리고 있던 고향집 어린 배나무, 오랜만에 만나 누님같이 허물없고 편안해진 여자 동창생이 들려준 학교의 나무 이야기에서 삶의 피로함과 쓸쓸함을 씻는다. 시인 오규원씨와의 오랜 교류를 회고하며 그와의 한 시대를 돌아본다. 동시대 시인의 육신의 힘이 시혼(詩魂)에 쫓겨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다가도, 문우의 부드럽고 넓어져 있는 마음에서 위로와 신세를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함께 짊어지고 온 문학과 삶의 길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헛되지 않았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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