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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52>보로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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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52>보로딘

입력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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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11월11일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887년 몰(沒). 음악사에서 보로딘은 19세기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조의 일원으로 기억된다. 국민음악파는 서유럽 음악이 압도하던 당대 러시아에서 국민 음악의 확립을 목표로 음악 창작에 민족적 색채를 짙게 들여오고 민요의 수집과 편곡에 힘쓰던 혁신적 예술가 집단을 가리킨다. 보로딘 외에 세사르 쿠이, 밀리 발라키레프,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국민음악파 작곡가 5인조로 꼽힌다.이들 5인조 외에 '러시아 예술은 우선 무엇보다도 러시아적이어야 하고, 그 다음은 리얼리스틱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참된 전망 속의 인민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음악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도 국민음악파의 일원이었다. 스타소프의 주장에서 보듯, 국민음악파의 지향은 민족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이기도 했다. 벨린스키, 체르니셰프스키, 도브롤류보프 같은 문인들의 혁명적 민주주의론과 리얼리즘론이 국민음악파의 사상적·예술이론적 자양분이 되었다.

보로딘이 민주주의자가 된 것은 불행한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농노 보로딘의 호적에 얹혀 자랐고, 그래서 탐스러운 교육을 받고도 차별의 눈길에 시달려야 했다. 보로딘은 본디 의사이자 화학자였다. 모교인 페테르부르크 대학 화학 교수로 있던 그는 친구 발라키레프의 영향으로 음악을 독학해 작곡가가 되었다.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1880)가 보로딘의 대표작이다. 미완의 오페라 '이고르공(公)'은 그가 죽고 세 해 뒤인 1890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가 완성했다. 국민음악파답게 보로딘의 음악적 주제는 늘 러시아적인 것이었지만, 그 선율은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에서 끝내 자유롭지 않았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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