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 중 박진표 감독의 '신기한 영어나라'. 토끼 모양의 옷을 입은 간호사와 친절한 의사는 아이의 'R'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혀 밑 인대를 잘라 낸 후 다시 실로 정성스럽게 꿰맨다. 불행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연약하고 심약한 나는 그만 화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대체 '과도한 잔혹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킬빌'의 기자 시사회가 열린 5일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분류 소위는 이 영화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대단한 규모로 영화 상영을 준비 중인 영화사는 당연히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해 다시 등급 분류를 신청했다.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영화는 기자나 평론가들이 본 영화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킬빌'이 보여준 피의 양은 트럭 1대 분량은 족히 됐겠지만 앞의 영화에 비해 잔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너무 허황되고 '뻥'이 심해 영화 속의 설정임을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급위원들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은 이 영화가 너무 잔혹해서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삭제 없이 이 영화를 본 기자나 관객은 얼마나 '정서'가 많이 상했을까. '죽어도 좋아' '엑스텐션' 같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를 모두 시사회를 통해 본 기자나 평론가라면 정서상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 틀림없으니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렇게 우선 기자와 평론가의 건강을 챙기고 나니 등급분류위원들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 많은 '문제 있는' 영화를 하나하나 보고 문제를 파악해야 하니, 그 생활을 여러 해 동안 한 분이라면 정서에 상당한 악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정서에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 18세 이상의 성인도 어떤 영화를 볼 수 없다면 그 등급의 유의미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정서에 악영향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기자나 평론가, 등급위원이 특별히 인격이 고매하거나 신경줄이 튼튼해서는 아닐 것이다.
설령 문제 장면을 삭제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 영화의 '정서상' 문제가 다 해결될까? 요즘 건강식이 유행하니 햄버거 빵도 흰 밀가루가 아니라 통밀로 만든 빵이 유행한다지만, 그렇다고 '정크' 푸드가 '선식'이 되고 '생식'이 될까. 찔끔찔끔 잘라 낸 요실금 같은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짜증이 난다. 대놓고 털 보여주고 미친 짓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이제 좀 여유를 가질 때가 된 것 아닌가?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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