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인가, 꽃가루인가. 2002년 경기 파주시 교하읍 파평 윤(尹)씨 선산 무연고 묘역 발굴 과정에서 나온 모자(母子) 미라의 소장과 대변 추출물 성분에 대한 학계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기생충이라면 현재까지 우리나라 인체에서 나온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흔적으로 상류층 질병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 미라를 집중 분석한 고려대 병리학교실 김한겸 박사는 지난주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린 '파평윤씨 모자 미라 및 출토유물전' 설명회에서 "추출물에 대한 전자현미경관찰결과 회충의 알일 수도 있고, 바깥쪽의 격자무늬로 보아 꽃가루일 가능성도 있다"며 "어떤 경우든 국내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고려대 박물관이 지난해 9월 발견한 이 미라는 전문의학팀, 자연과학분석팀의 정밀검사 결과 그 주인공이 조선 전기 윤소의 딸로 1566년께 출산 도중 자궁파열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 박사는 추출물이 기생충의 알일 경우 관련 연구에 획기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라에서 기생충 감염의 증거를 찾아냈다는 보고가 없고, 외국에서도 미라에서 기생충 감염 증거를 알로써 확인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기생충이라면 상류층의 질병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물질이 꽃가루더라도 임신과 관련해 섭취한 음식물에서 온 것인지, 오염된 식수 때문인지를 밝힐 수 있다면 영양학·의학적 측면에서 당시 식생활사 규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미라의 발굴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우선 미라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고온다습 기후에서 세균의 활동이 정지돼 부패가 중단된 사례를 처음 찾은 것을 두고 의학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한 출산 도중 숨진 모자 미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며, 부패가 부분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스의 힘에 의해 관내 분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라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약 20여구의 미라가 나왔으나 모두 화장됐으며, 미라가 본격적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해 단국대 박물관의 '아기 미라'에 이어 두 번째다.
고려대 박물관은 미라와 함께 나온 의복 66점과 한글편지, 미라 주인공이 사용했던 신발, 얼레빗, 참빗, 머리끈 등을 7일부터 전시하고 있으며 22일까지 계속한다. 특히 윤원량의 딸이자 인종의 계비였던 숙빈이 쓴 한글편지는 1566년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한글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광식 박물관장은 "인간의 몸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미라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학제 간 연구를 통해 많은 사실을 알아내 미라 연구의 전범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02)3290―1511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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