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만들어진 차가 지금도 굴러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오래된 차가 고장 나 자동차 회사로 찾아간다면 고쳐줄 수는 있는 걸까. 부품도 없을 테고, 설계도도 없을 텐데…'결론부터 말하면 이 질문의 정답은 "최소한 메르세데스 벤츠가 만든 차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종될 차라면 사지 않는 게 상책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 센터
이 달 초 방문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외곽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클래식 센터 1층 전시장에는 노란색 차체와 둥근 헤드라이트가 인상적인 '메르세데스 630'(1926년 생산)과 양쪽 문이 하늘 방향으로 열리는 은빛 쿠페 '메르세데스 300 SL'(1956년 생산) 등 구형 벤츠 자동차 30여대가 놓여 있었다. 클래식 센터를 방문하기 전 찾았던 벤츠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 온 듯 했다.
"설마 이 차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겠죠"라는 기자의 질문에 플로리얀 하직 클래식 센터 홍보담당관은 "직접 타보라"고 말했다. 비교적 '최신형'(1964년)인 '메르세데스 벤츠 230 SL'을 골랐다. 요즘 차와 달리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없고 운전대 크기도 1.5배에 달해 '고물' 냄새가 펄펄 났다. 그러나 차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벤츠 생산공장이 있는 진델핑겐까지 30여㎞를 쌩쌩 달렸다. 시속 100㎞로 밟으니 약간의 소음만 느껴질 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 클래식 센터에서 구형 자동차 판매는 물론 구매, 수리 및 복원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엔진, 액셀러레이터, 트랜스미션 등 6만 여개의 부품을 비축하고 전세계 2,500여 개의 대리점과 협력업체를 통해 부품을 교환해준다. 2차 대전 직전 모델에 대한 부품 의뢰가 들어오면 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자료를 통해 이를 찾아낸다.
크리스티안 트리버 클래식 센터장은 "어느 나라에서든 벤츠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굴러간다면 우리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철과 유리와 고무를 파는 게 아니라 전통과 고객만족을 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벤츠에서 구형자동차로 분류되려면 단종된 지 20년은 지나야 한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생산공장과 R&D센터
차에 대한 벤츠의 열정과 장인정신은 클래식 센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벤츠의 심장부인 진델핑겐의 생산공장에서는 전체 공정의 40%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주문자의 특성에 따라 100여가지가 넘는 옵션이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문자 생산 방식을 통해 고객 입맛에 맞는 최고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전통을 살리자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공장에서 연간 생산되는 E클래스급 자동차 300만대 중 똑같은 제품은 단 2대 뿐이다.
슈투트가르트 외곽에 있는 연구개발(R& D)센터도 창업주(칼 벤츠)가 1886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계승해 신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첫 디젤 승용차(1930년)와 ABS 브레이크 시스템(1970년), 에어백(1971년), 프리세이프 시스템(2002년·사고 직전 안전벨트를 꽉 조이고 좌석을 뒤로 당겨주는 시스템) 등 자동차 역사의 물꼬를 바꾼 신기술이 바로 이 R&D센터에서 나왔다.
이곳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8,000여 명으로 연간 29억3,000만달러의 개발비가 투입되고 있다. 최근 벤츠사가 가장 역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는 있는 부문은 수소연료차의 연료전지(Fuel Cell) 상용화와 자동항법장치. 유럽에서 30대가 시범운행 중인 수소연료를 이용한 시내버스 '시타로(CITARO)'에도 벤츠의 삼각 별 로고가 박혀있다.
요르그 좀머 R&D센터 제품전략 이사는 "자동차는 외부 프레임을 제거하면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기술선도성과 리더십에서 벤츠를 따라올 경쟁사는 없다"고 강조했다.
/슈투트가르트=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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