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구 살 많이 빠졌네. 선물로 선생님이 뽀뽀해줄까" ( '그녀의 무게')#2. "아니 네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야죠. 무슨 횡설수설하는데. 진짜 몰랐다니까요." (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인권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 자유 평등 등에 관한 기본적 권리'다. 하지만 생명은 자주 위협 당하고, 자유롭지 못할 때가 더 많으며, 남보다 잘 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일은 너무 잦다.
'여섯개의 시선'은 임순례의 '그녀의 무게'(사진), 정재은의 '그 남자의 사정', 여균동의 '대륙횡단', 박진표의 '신기한 영어나라', 박광수의 '얼굴값',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등 '이름 값'하는 6명의 감독들이 만든 중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고, 주제가 '인권'이니 '내겐 너무 무거운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재주 있는 감독들이 그런 대중의 우려를 몰랐을 리 없다.
인권 영화 프로젝트 6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설'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생이기보다 '예비 직장인'이고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업이 아니라 취업이다. 그 취업에서는 얼굴이나 몸매가 중요하고 당연히 교사는 학생의 몸매 관리가 더 중요하다('그녀의 무게'). 장애인이 외출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육신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보행 시스템이고, 결국 그들에게 광화문 사거리를 걷는 일은 험난한 일일 뿐이다('대륙횡단'). 우리 아이의 혀는 음식의 맛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R' 발음을 내기 위해 혀 밑 인대를 잘라내야 하는 촌스러운 발음 도구('신기한 영어나라')에 불과하고, 성범죄 재발을 막기위해 성 추행범을 공개하는 것은 한 인간의 명예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그 남자의 사정'). 못생기고, 장애 있는 이들만 억울한 것은 아니다. "예쁜 아가씨가 말 버릇이 왜 그래"라는 식의 시비('얼굴값')는 우리가 타인에게 행하는 무례함의 표본이다.
압권은 역시 이방인에 대한 편견. 네팔 노동자 찬드라는 공장에서 나와 국수를 먹다가 돈과 길을 잃어버린 후 정신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돈을 잃어버린 그녀는 무전취식자로, 네팔어는 정신병자의 횡설수설로 오인됐으며, '찬드라'라는 그녀의 이름은 '선미야'라는 한국식 이름의 멍청한 발음으로 해석됐다. 찬드라 대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만을 보여주는 영화의 촬영 방식은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차갑고, 야멸차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 준다. 이쯤 되면, 1시간44분의 유쾌한 계몽에 빠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다.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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