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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백수… 주인공 삶이 내삶"/"위대한 유산" 감독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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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백수… 주인공 삶이 내삶"/"위대한 유산" 감독 오상훈

입력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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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씨는 서른 일곱이다. 최근까지 직장도 없었고 돈도 벌지 못했다. 무려 7년 동안 일정한 수입이 없는 백수였다. "삼십 칠년 동안 번 돈이 모두 1,500만원"이라고 한다. 그는 10월24일 이후 전국에서 120만명 이상을 웃기는 중이다. 오씨는 영화 '위대한 유산'으로 데뷔한 늦깎이 감독이다.오 감독은 "7년 동안 준비하다가 뒤엎기를 반복하다 보니 '입봉'한다고 해서 별 느낌이 없다. 늙어버렸다"고 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진행비도 이제 안 나온다. 그래서 전철 타고 나왔다."

개봉 시기를 잘 잡았으면 더 많은 관객이 들 수도 있었을 거라고 덕담을 건네자 "처음에 너무 올라가면 내려갈 일밖에 없다. 이런 영화 잘 되면 전부 이런 영화 만들겠다고 나설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마 이런 자신감이 그의 오랜 백수시절을 견디게 한 힘일 터였다. 11년 째 사귀고 있다는 여자친구도 이런 점을 믿었던 건 아닐까.

취직난 세태를 반영한 백수와 백조의 소소한 일상이 '위대한 유산'의 매력이다. 오랜 백수 이력을 자랑하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촬영 현장에 가보면 결국 주인공의 삶이 내 삶이더라. 만화가게에 가도 돈이 없으니까 제일 재미있는 것을 골라야 하고, 또 그걸 열심히 봐야 했고. 물론 사발면도 아껴먹어야 했다." 영화 속 창식(임창정)과 미영(김선아)의 에피소드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배우 김선아의 연기. 그러나 오 감독의 애초 복안은 김선아가 아니었다. "물불 안 가리고 김선아가 주연을 해야겠다며 주변을 괴롭혔다(웃음). 매일 연극배우에게 연기지도를 받고 링거 맞고 나올 정도로 집요했다. 철저히 준비를 해왔다. 그래서 나중엔 그 친구를 위한 영화로 바꿔버렸다." 오 감독은 김선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며 그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안길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부터 부르지 못한 미안함과 애정, 그리고 기대를 동시에 담은 그만의 표현 방식이었다.

코미디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는 '위대한 유산'은 코미디가 아니고 '트렌디 멜로'라며 자신은 '눈물 펑펑 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위대한 유산'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도 후반부 퀴즈쇼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남녀를 맺어줄 좋은 기회였으니까."

"백수도 7년 차 정도 되면 공력이 생긴다"는 그는 '어머니께 작품 하나는 보여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시사회 때 어머니에게 "37년 간 고생하셨다"고 말할 때를 회상하면서 그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백수 시절이 그의 말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저축한 기간'이라면 앞으로는 백수 시절의 유산이 그를 먹고 살게 해줄 것이다. 당장은 "37년 동안 얻어먹은 걸 갚느라 감독 개런티를 다 썼지만".

/이종도기자 ecri@hk.co.kr

사진 김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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