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극구 평범한 사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상황에 맞춰 그냥 열심히 살 뿐"이라며. 이휘조(李輝朝·43)씨는 국내 대학원 석사에다 유학도 다녀왔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한창 잘 나가던 때 증권사와 투신사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경영관련 컨설턴트였으며 유망한 벤처기업가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이 사회 '주류(主流)'로서 전혀 꿀릴 게 없는 삶이다. 그런데 불황으로 이런 경력을 접게 되면서 그가 주저없이 택한 직업은 자장면 배달원이었다. 얼마 전 선배가 하는 작은 업체의 이사직을 맡았지만 배달 일을 그만 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투잡(two job)'을 해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정작 그를 평범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 건 이런 이력보다도 삶을 대하는 그의 당당함이다.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인데 나쁜 일이 아니라면 뭘 하건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는. 그래도 부질없는 체면과 허세에 길들여진 세태에서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랴. 그를 만나봐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침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심지어 '삼팔선'이니 하는 따위의 잔인한 말장난에 다들 전전긍긍하는 때이기도 하니.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휘조(李輝朝·43)씨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의 모습이다. 학자나, 대기업의 엘리트간부 쯤으로나 보이는. 빗어넘긴 머리결은 정갈하고, 용모는 반듯하며, 말투와 미소는 기분 좋게 잔잔하다. 한마디로 '배운 사람' 티가 물씬 나 도무지 험한 일과는 연관 지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유학시절부터 배달 일을 해본 그 분야의 베테랑이다. 그는 닥치는 상황을 피하거나 거스르지 않는 사람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선선히 받아들이는 게 그가 사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북에서 피란나온 부모님이 "입 하나라도 덜자"며 삼형제 중 둘째인 그만 외가에서 유년을 보내게 했을 때도. 공부 잘하던 중학교 때 집안을 돕겠다며 실업고(덕수상고)로 진학할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
졸업과 함께 외환은행에 들어가 스물여섯까지 다니는 동안 대학(동국대)도 마쳤다. "은행 일이란 게 단순 반복이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는 대학원(한국외국어대)에 진학해 경영정보학 석사를 땄다. 그리고 한양증권(주)에 입사했다. 1988년이니 증권회사라면 평사원들까지도 우리사주 등으로 억대부자가 됐다던 그 시기다. 모두가 선망하던 회사를 또 1년 만에 그만뒀다.
펀드매니저 공부를 하려 한남투신(주)으로 옮겨갔다. "국제부에서 일했는데, 외국어 능력이 아쉽더라구요. 자연스레 유학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동생이 일본에서 유학 중이기도 했구요."
91년부터 3년간 일본생활을 하면서 도쿄(東京)의 어학원을 거쳐 요코하마(橫浜)국립대학원 경영정보학 과정을 마쳤다. 거기서 아르바이트가 신문배달이었다. "신문사에서 숙식을 해결해주었거든요. 새벽 2시 '찌라시'(전단지)를 끼우는 일로 시작해 동틀 때야 배달이 끝납니다. 조석간(朝夕刊)제라 오후에도 또 한차례 같은 일을 합니다. 틈틈이 어학원을 다니며 시험준비를 했지요." 대학원 때는 빠찡꼬 업소에서도 일을 했다.
귀국 후 한국MIT컨설팅(주)라는 중견업체에서 기업의 경영정보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일을 맡았다. 적성과 전공에 맞는 일이었는데 IMF사태가 닥쳤다. 운영자금에 허덕이는 사장을 보다못해 사직을 하고 동생과 온라인 교육컨텐츠 개발업체를 차렸다. 한때 벤처 붐을 구가하던 이 회사도 지난해 초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배달 일을 시작한 게 이 때였다. "당장 가족을 위한 수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할만한 걸 찾았지요." (이 대목, 그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공부하는 와중에도 빈 시간은 거의 없다. 이력은 톱니바퀴처럼 시기가 맞물려있다. 뭔가를 하는 데 이것저것 재며 망설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바로 퀵서비스 업체를 찾아갔다.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요. 처음엔 아는 이라도 만날까봐 종일 선글라스를 쓰고 일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뭐 부끄러운 짓을 하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벗으니 그렇게 시원한 것을. 불경기 탓에 배달물량이 적어 벌이는 시원치 않았어요.'' (물론 이것만으로 생활은 되지 않았다. 중등교사 출신인 아내가 논술지도 등으로 얼마간을 보탰다)
겨울 들어 배달일이 어려워지자 친지를 통해 경기 이천의 닭농장에 들어갔다. 10만 마리를 키우는 계사(鷄舍) 6동에 불을 지피고, 바닥을 청소하고, 하루 1만7,000∼1만8,000개에 달하는 알을 수거하는 일이었다. 면도칼과 물수건으로 알 표면에 말라붙은 닭똥도 일일이 긁어내 닦았다. "너무 중노동이어서 한국 일꾼은 없습니다. 중국인들하고만 일했지요."
중국집 배달일은 올 봄부터다. "일산 집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의 업소를 골랐습니다. 아내야 알지만 초등학생 아들에게는 아직 보일 자신이 없더라구요."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을 배달하는 번듯한 중년신사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데도 그는 일반직장 얘기를 풀어놓듯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이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출근하자마자 단무지와 양파를 썰어 종지에 미리 다 담아둡니다. 그리고 간 밤에 시켜먹은 집을 돌며 빈 그릇을 수거합니다. 아침 10시쯤에 밥을 먹고는 PR지를 들고 주변 아파트를 돕니다. 11시 반쯤부터 오후 2시까지는 배달이지죠. 그 뒤 그릇을 수거하고, 간간이 배달도 나가고, PR지에 고리를 꿰다보면(아파트 문고리에 걸도록) 저녁배달 시간이지요. 석달 이상 계속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한식 배달보다는 나아요. 그것도 해봤는데 뚝배기 그릇이 무거워서 며칠 만에 팔에 심한 통증이 오더라구요."
어려움은 그뿐이 아니다. 간혹 고객이나 아파트 경비가 함부로 던지는 말도 넘겨야 하고, 음식에 국물까지 남겨 그대로 내놓은 그릇을 옮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자장면 한 그릇 값 받으러 10여 차례나 찾아간 일도 있다. "그릇을 비우고 설거지 물이라도 한번 끼얹어 내주는 집은 정말 고맙지요. '교양'이 보입니다."
이씨는 보름 전 배달일을 잠시 접었다. 그를 아껴온 선배가 양재동에 사무실을 내면서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한 때문이다. 기업용 토탈컨텐츠 보안기기 생산업체 '엑스큐어넷'의 판매업체다. "곧 다시 배달일을 할겁니다. 회사 일은 지금 열심히 마케팅을 해도 수확은 내년 봄에나 가능할 테니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하거든요." 아마 당장 며칠 뒤면 '변신로봇' 마냥 아침저녁으로 모습이 바뀌는 그를 보게 될 터이다. 말쑥한 차림새로 제품상담을 하다가, 철가방을 싣고 오토바이로 내달리기도 하는.
이휘조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득도(得道)한 이와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 지금 형편이 어렵다해도 (지난 주말 일산에서 좀 더 먼 곳으로 이사했다) 그의 말과 태도는 도통 걸림이 없이 맑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삶에 결코 주눅들지 않는 자유인이되, 삶의 책임에는 분명한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절묘한 모순의 어울림 아닌가)
― 그래도 힘든 노동을 하다 보면 고생하며 한 공부나 쌓은 경력이 아쉽다는 생각은 들텐데….
"웬걸요. 순간순간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배울 것도 많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문제일 뿐이지요." 스스로가 왠지 왜소해지는 느낌이어서 이런 질문은 더 하지 않았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 "아빠가…" 책도 내
이휘조씨를 알게 된 건 우연히 서점에서 눈에 띈 그의 책 때문이다. 교육에 관한 단상들을 담은 책이다. 유치원생 아들(그러니까 6년전 쯤이다)로부터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아빠가 해준 게 뭐있어"라는 말이 그대로 제목이다.
그는 그때부터 좋은 아빠가 되려 '분투 중'이라고 했다. 방법은 공부였다. 우선 뭘 알아야 아이를 바람직한 삶의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동서고금의 난해한 철학서부터 문학, 예술, 과학서 등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고 글을 썼다. 배달일을 하면서도 책 구입비로 월 50만원씩 들어갔다. 어려운 살림에도 아내는 남편의 '아빠학' 공부를 격려해 주었다. 이씨는 이다음에 작으나마 '진짜'(입시용이 아닌) 논술학원을 차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의 정서와 품성을 살찌우는 일을 하는 게 꿈이다.
그래서 그에게 아이 교육법을 물었다. 요지는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것.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세요. 부모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집안 문제도 같이 생각하도록 하는 겁니다. 교훈적인 얘기만 하는 건 최악이지요. 아이에게는 늘 뭔가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리세요. 아이는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더 성숙한 존재입니다." 글쎄, 그의 삶처럼 이 역시 평범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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