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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41>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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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41>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하다

입력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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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처음 공동체를 시작할 때는 내가 어떤 운동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단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일하면서 함께 먹자는 것 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거나 남에게 강요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갈 길을 가면 됐다.그러나 양주로 건너와서 시작한 유기농은 조금 달랐다.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를 이용한 농사의 해악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 홀로 '유기농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또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유기농으로 생산한 농산물도 의미가 없게 된다.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이처럼 사회 전반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먼저 있어야 했다.

처음 사회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러나 유기농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우리사회의 대변혁기였던 1980년대 후반께 어느 신문에선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라는 시민운동단체가 발족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는데 이 단체의 창립취지에 눈길이 끌렸다. '토지공개념' 등을 주장하며 분배의 불평등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분배문제 또한 나의 관심사였던 터라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내가 먼저 만나자고 연통을 넣었다.

그렇게 당시 사무총장이던 서경석씨를 만나 장시간 경실련의 설립취지와 활동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이야기 끝 부분에서 서 전 총장은 "원장님께서 고문을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고 제안했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서 전 총장이 "전면에 나서서 크게 하실 일도 없으니 젊은이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이나 해 주십시오"라며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내가 물러서고 말았다.

경실련 고문은 실제 크게 할 일이 없었다.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나 손봉호 명예교수, 송월주 스님 등이 공동대표로 일선에서 큰 역할을 하고 나를 포함해 3∼4명의 고문들은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총회 등에나 참석해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였다. 회의에서는 주로 경제관련 문제들이 토론에 부쳐졌는데 나는 유기농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유기농 문제는 그다지 매력적인 이슈가 아니었던지 크게 부각되질 못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마냥 혼자서 유기농을 떠들다 경실련 내부에서 동지를 만난 것이 1992년이다. 미국에서 귀국해 경실련 산하의 경제정의연구소 소장을 맡게 된 유재현 박사가 유기농에 대한 나의 집념과 애착을 알아준 것이다. 유 박사는 도시계획이나 주택정책·환경문제 등을 전공한 연구자였는데 환경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전문가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포스코 등 국내기업을 상대로 환경강연을 주선하는 등 열성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유 박사가 내게 "원장님, 국내 유기농 현황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주십시오"라며 뜬금없는 요청을 해 왔다. 그 해 6월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전세계 정부와 민간단체 대표들이 모여 유엔세계환경회의를 개최하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민간단체 대표로 참석해 유기농에 대한 강연을 하라는 것이었다. 교회나 정농회 일로 강연을 해 본 경험은 많지만 외국인 청중 앞에서 입도 잘 떨어지지 않는 영어로 강연을 한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유기농 수준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호기라는 유 박사의 설득에 승낙을 하고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면서 회의참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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