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1월10일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이스탄불에서 작고했다. 향년 57세. 파샤는 오스만투르크제국에서 군대 지휘관이나 고급 관료를 존경의 뜻으로 불렀던 칭호다. 무스타파 케말은 제1차 세계대전 중 군사령관으로 다르다넬스 해협과 동부 국경의 방위를 맡은 바 있다. 그러나 터키 사람들은 케말을 파샤라고 부르기보다 아타튀르크라고 부른다. 아타튀르크는 '터키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런 관행이 되풀이되다 보니, 아타튀르크가 마치 케말의 성(姓)처럼 돼 버렸다. 성이 국부(國父)다!그럴 만도 하다. 터키 사람들에게 무스타파 케말은 중국 사람들에게 쑨원(孫文)과 마오쩌둥(毛澤東)을 합쳐놓은 것 같은 인물이다. 쑨원처럼, 케말은 오랜 세월 조국을 옥죄던 군주제를 뒤집어 엎고 공화제를 수립했다. 마오쩌둥처럼, 케말은 종이 호랑이가 된 조국을 짓밟던 외세를 몰아냈다. 무스타파 케말이 이끈 터키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여진 속에서 진행되었다.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섰다가 패전국이 된 오스만투르크를 유럽 열강들은 분할하고자 했고, 전승국의 일원이 된 그리스는 연합국 열강의 비호 아래 오스만제국의 심장부인 소아시아를 침공했다. 케말은 그리스와의 전쟁을 총지휘해 승리로 이끈 뒤, 1922년 10월 공화제를 선언했다.
케말이 이끄는 공화국 터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술탄칼리프제의 폐지였다. 술탄칼리프제란 세속 권력의 일인자인 술탄이 종교 권력의 수장인 칼리프를 겸하는 정교일치제도다. 터키는 혁명 직후 칼리프제와 술탄제를 차례로 폐지했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 곧 세속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세속주의에 대한 케말의 신념은 확고했고, 그 덕분에 터키는 이슬람 국가로서는 드물게 정치가 종교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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