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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그들만의 정치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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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그들만의 정치개혁안

입력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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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대선자금 정국의 코너에 몰린 여야 정치권은 앞 다투어 정치개혁안을 내놓으며 발 빠른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다. 각 당 총무들과 당 대표의 회동도 계속되면서 오랜만에 여야가 손잡고 웃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야의 손잡은 모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일이지만 서로 할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보다는 훨씬 좋은 일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그 웃는 모습이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정치개혁을 위한 합의의 웃음인지, 그들만의 잔치를 위한 담합의 웃음인지, 의문이 앞선다.요즈음 정치권이 제시하고 공론화 시키고 있는 정치개혁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과 우선순위, 그리고 전제조건의 충족에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잠시 무디게 해보려는 방편의 일환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가 요구해왔던 정치개혁안을 대폭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개혁의 기본정신과 기본방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지구당 폐지, 후원회 폐지, 완전선거공영제 확립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이 정치권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어쩐 일인가.

우선 지구당 문제의 경우, 그것이 돈 먹는 하마가 된 까닭은 제왕적 지구당위원장에 의해 독단적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당 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구당위원장 제도의 개선을 논하는 것이 옳다. 서너 명의 공동대표가 지구당을 운영하여 지구당위원장의 사조직화를 막고 그 지역의 민심을 파악하고 정당인들이 토론할 수 있는 장소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지구당을 폐지하면 공조직을 대신할 사조직이 성행하여 검은 돈의 흐름이 일상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완전선거공영제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공영제는 서구 선진 국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보고된 선거비용의 72%인 553억원을 국고에서 지출한 바 있다. 완전선거공영제의 주장에 앞서 정치권은 스스로 선거운동방식에 대한 개선에 합의해야 한다.

후원회 폐지도 법인세 1% 정치자금화로 정치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얕은 꾀로 비쳐지는 것은 지나친 우려인가.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이고 절약하려는 생각보다는 정치자금 주머니를 크게 하려는 생각이 앞선 것 같아 씁쓸하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정치개혁은 검은 돈의 차단과 고비용 정치의 청산이다. 깨끗한 돈으로 절약하며 정치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국민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따라서 최우선으로 손봐야 할 제도는 정치자금제도인 셈이다.

앞으로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도 검은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정치를 할 수 없는 제도, 불법정치자금에 손을 대었다가는 아예 정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제도가 필요하다. 투명한 정치자금의 수급을 위해 단일계좌를 이용하고 수표와 신용카드로 지급하도록 하는 외에 선거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의 사용 내용을 추적할 수 있도록 중앙선관위가 계좌조사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경우 공소기간과 공무담임권제한 기간을 대폭 늘여야 한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정치권이 솔선하여 받아들인 이후 법인세 1%의 정치자금화를 요구해도 늦지 않다.

정치권이 과거 정치관행을 성찰하고 기득권 포기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말로만 사과하고 그럴 듯한 대안제시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과거 정치관련법의 개정 과정에서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 통과시켜 개혁 아닌 개악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기회다. 정치권이 내놓은 카드를 신중히 검토하여 정치개혁의 주춧돌이 될 수 있는 카드만을 제대로 뽑아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정 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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