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계가 전대미문의 시청률 조작 사건으로 시끄럽다.니혼TV의 프로듀서가 탐정사무소를 통해 일본비디오리서치의 시청률 조사 표본 가구를 알아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들을 보는 대가로 5000∼1만엔씩을 준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매수'된 가구는 네 가구. 시청률로 환산하면 고작 0.67%다.
그러나 이게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후지TV(8.9%), TBS(7.9%), 아사히TV(7.0%) 등 민방의 시청률 차이는 1% 안팎이지만, 이에 따른 영업 이익은 100억엔에서 많게는 150억엔 이상 벌어진다.
현재 니혼TV의 스폿광고 단가는 시청률 1%당 10만엔 전후로 추정된다. 가령 1시간 프로그램에 광고 30편이 붙었다고 가정하고 시청률 0.67%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201만엔(6만7,000엔갽30편)에 달한다. 네 가구를 매수하는데 몇 백만엔을 써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일부 광고주는 니혼TV에 광고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개인 비리로 덮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니혼TV는 회사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사전에 문제를 알고도 쉬쉬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별개로 경영진의 도의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편성국장 출신의 사장이 노골적으로 시청률 경쟁을 독려했고, 프로듀서 연봉에 시청률을 반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9년 연속 종일, 골든타임(오후 7∼10시), 프라임타임(오후 7∼11시), 논프라임타임 등 시청률 4관왕을 지켜온 화려한 역사 뒤에는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시청률 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시청률 조사에 대한 '절대 신화'도 무너졌다. 2조엔을 넘는 민방 광고시장이 단 300가구(간토 지역)의 시청률에 좌우되는, 한마디로 얼마나 허술한 지가 증명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민방업계와 광고대행사가 대주주로 있는 비디오리서치가 시청률 조사를 독점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질을 광고 발주 기준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가 아니라 무슨 내용을 어떻게 봤는지가 중요시되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김경환 일본 조치대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