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반(反) 평등주의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몇몇 정치인, 대학총장과 교수, 기업인 등 지도층이 이에 앞장 서고 있다. 예컨대 최근 '코리아 리더스 포럼'은 평등주의와 평준화를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이들 엘리트집단의 목소리는 선도성과 파괴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이들의 제기한 '평등주의 함정론'은 강성노조, 집단이기주의, 곱지않은 기업인관 등이 성과주의를 부인하고 효율과 역동성을 저하시킨다는 시각인 듯 하다. 또한 '평준화의 덫론'은 고교 평준화가 공교육 황폐화,교육경쟁력 약화, 나아가 부동산 버블까지 야기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들은 평등주의가 어렵게 쌓아놓은 우리나라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잠식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우려한다. 평등주의가 국민의 성취동기와 경제의지를 무너뜨렸고, 지금의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복원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상황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자유 평등 정의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나치다. 담론을 여는 것은 좋지만, 그에 대해 분명한 검증과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채,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관념적 명제에 관해 저마다 논리를 펴대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결론 없는 쳇바퀴식 순환론에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령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법 앞에서 출생 특권 계급 인종 종교 등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기회의 균등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의 정치적 도덕적 가치이지, 키, 무게, 지적수준까지 같다는 뜻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평등주의가 '기회'의 균등 이외에 '결과'의 평등까지 추구하면 '효율'을 중추원리로 하는 경제, 그리고 '자아고양'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문화와는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평등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국민이 지향하는 평등의 내용과 한계가 무엇인가를 먼저 검증하고,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 있을 경우 정치력을 발휘하여 조정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낙후한 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개혁이 절박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교육은 인격체에 체화된 지적활동이다. 따라서 교육을 철저하게 효율과 선택의 대상인 순수시장재로 취급해 자유경쟁체제에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고교는 지금도 절반인 49.6%가 비평준화 지역인 61개 시와 86개 군 등 낙후과소(落後過疎)지역에 산재한다.반면에 평준화 고교는 소득, 문화시설, 교육자원 등이 절대 우위에 있는 과밀지역인 6개 광역시와 17개 시에 있다. 자유경쟁입시가 효율을 높일 것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비평준화 고교생들의 평균 학력은 평준화 학생들에 비해 낮다. 일류대학 입학률도 저조하다. 따라서 교육효율화는 평준화 문제보다는 자원배분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 국민은 세계에 유례없이 높은 지적 호기심과 성취동기를 갖고 있으며,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욕구도 강하다. 반면에 수준별 성과배분에 대해서는 거부의식을 갖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조화와 타협이 우선적 과제다. 따라서 함정이니 덫이니 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기 보다는 국민정서의 조화를 이루는 데 주력하는 것이 급선무다.
필자는 이 땅의 지성인과 지도층은 우리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조화와 타협의 시대정신을 배양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검증도 되지 않은 함정론, 덫론 같은 것을 제기하는 것은 새로운 지적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어서,국민적 동의과정 없이 멋대로 확산될 경우 체제의 근본조차 부인될 수 있다. 한계를 넘지 말기 바란다.
전 철 환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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