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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앉지 못한 아버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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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앉지 못한 아버지 자리

입력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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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두 가지 결혼을 경험했다. 하나는 10년 전 나와 아내의 결혼이고, 또 하나는 최근 아내의 아들 결혼이다. 나의 한국인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한번 결혼한 적이 있었고 두 명의 아이까지 두었다. 나이도 나보다 많았다.나는 초혼이었지만 아내를 깊이 사랑해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하면서 나는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 즉 있는 그대로의 내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아내의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로 여겨 사랑하고 뒷바라지하며 키웠다.

아들은 호주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 그리워했지만 보수적인 여자의 부모는 딸을 애인만 있는 호주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양가에서는 아직 결혼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지만 둘을 맺어주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 날짜를 잡자 신부 부모 쪽에서 신랑의 아버지 자리에 외국인을 앉히기는 좀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항의'가 들어왔다. 아내는 화를 내며 울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달랬다. "결혼식 날은 우리 아들이 제일 행복해야 하는 날이며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기꺼이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있다."

그러자 아내는 차라리 우리 둘 다 결혼식에 불참하자고 했다. 나는 역시 반대했다. 결혼날 아들에게 양가 부모 사이에서 갈팡질팡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들의 결혼을 직접 축하해주고 싶었다.

결국 결혼식 날 아내의 옆에는 아내의 남자 형제가 남편인 양 앉았고 나는 그냥 가족석에 앉았다. 덕분에 아들의 결혼식은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나와 아내는 서로 멀리서 눈길만 주고 받으며 아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아내는 내게 너무 미안해 했다.

그 복잡한 아들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체면이 무엇인가 묻고 싶어졌다. 엄연히 있는 것을 없는 양 슬쩍 가리면서까지 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가. 왜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사랑하지 못하는가. 한국의 관습으로 보자면 도저히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의 며느리를 예뻐하고, 그 아이들까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한국인들에겐 바보로 비쳐질 것인가. 가끔은 한국인의 지나친 민족주의와 체면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얄미울 때가 있다.

크리스토퍼 로렌스 호주인 비즈니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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