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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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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 지음·조규형 옮김 책세상 발행·9,000원

"더 이상 노를 저을 수 없었어요. 손에는 물집이 생기고, 등은 타들어가고, 온몸이 아파왔지요." 배가 난파된 뒤 바다를 떠돌던 로빈슨 크루소의 고통스런 신음 같다. 소설의 문장은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다. 유괴된 딸을 찾기 위해 브라질로 갔던 수전 바턴은 딸을 찾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선원들의 폭동으로 바다에 내던져진 그는 섬으로 떠내려 간다. 15년 전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와 노예 프라이데이가 사는 곳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고전과 달리 아집으로 가득 찼고, 잔혹하며, 피로로 지쳐 있다. 원전에서도 흑인 노예에 대한 편견이 보이거니와 존 쿳시가 이 지배―피지배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주인(로빈슨 크루소)과 노예(프라이데이)라는 원전의 대립구도 뿐만 아니라, 원전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섬의 왕으로 군림해 온 남성과 대립시킨다. 여성이 나타나기 전까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말과 침묵(프라이데이는 혀가 잘려 말을 할 수 없다)이었다. 두 사람 만의 섬에 침입한 바턴이 이 관계를 흔들기 시작한다. 바턴은 의욕을 잃은 지 오래 된 크루소에게 섬을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을 당차게 밝히고, 프라이데이의 길들여진 침묵에 의문을 제기한다.

'로빈슨 크루소' 다시 쓰기는 존 쿳시의 오랜 문제 의식과 닿아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갈등의 알레고리를 소설에 담았으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방식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고발했다. 지배자의 권력은 '포'에서 '언어'로 표출된다. 크루소는 말할 수 있으며, 프라이데이는 말할 수 없다. 바턴은 크루소 앞에서 말하고 싶어하고, 크루소는 바턴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전반부가 쿳시의 일관된 관심에서 쓰여졌다면 후반부는 '언어'에 대한 작가의 문제 의식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 것으로 읽혀진다. 바턴은 작가 다니엘 디포를 만나 자신이 겪었던 섬 생활을 들려주고, 디포는 실제 경험만으로는 재미있는 얘기가 될 수 없다면서 상상과 허구를 도입해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쓰려고 한다. 언어가 진실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진실을 만드는 게 아닌가, 소설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라는 쿳시의 고민을 헤아릴 수 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부분에 주목해 "존 쿳시의 '포'는 색다른 '로빈슨 크루소'인 동시에 문학과 삶에 대한 복잡한 우화다. 소설과 실제 경험담 사이의 간극을 조사하면서, 소설의 의미와 구상에 대한 풍부하고 놀라운 텍스트를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평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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