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나고 북풍이 슬며시 밀려오면 정겨운 고향 집 뜨락과 뜨듯한 아랫목이 아련하다. 경기도엔 고향의 포근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녹색농촌마을이 6개나 있다. 숙박은 물론이고 영농체험, 유적답사, 낚시와 전통놀이뿐 아니라 농·특산물 및 음식판매까지 이뤄지는 그린투어(Green Tour·녹색 관광)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매혹적이지만 동틀 녘 산골마을에서 게으른 기지개를 켜면 잠보다 먼저 향수(鄕愁)가 달아난다. 찌든 회색도시인의 월동 목록에 그린투어로 밑줄을 그어보는 건 어떨까.인절미 손두부 군침 도는 황토 오두막
경기 여주군 상호리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범실(범마을)이다. 대렴봉 수리바위산 호실령이 살포시 안은 마을은 일제시대만 해도 국내 3위의 금(金) 산지였다. 지금은 잡곡이 금빛으로 일렁이고 표고버섯과 야채를 유기농으로 짓는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황토로 만든 전통 초가에 짐을 부려놓으면 문화유산해설사 자격증을 딴 주민이 직접 명성황후 생가와 신륵사, 영릉(세종대왕릉) 등 주변 역사 유적에 얽힌 전설과 민담을 구수하게 풀어낸다.
부부가 함께 인절미 손두부 메주 등을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손 가득 흙을 어루만질 수 있는 옹기 도자기 체험도 있다. 아이들은 널뛰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에 빠져 해가 지는지도 모른다.
황토 오막살이 아랫목에 뻣뻣한 등을 실하게 지지고 나면 피로가 싹 가신다. 주민들이 정성스레 가꾼 표고버섯이며 채소를 직접 살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옆 마을 주록리도 녹색농촌마을이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사슴이 뛰어 놀았다는 마을 이름처럼 산림이 마을 대부분인 전형적인 산촌이다. 직접 채소와 고구마를 캘 수 있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궁이에 불 때고 낚시 즐기는 전원일기
양평군 양수1리는 종영 드라마 '전원일기'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북한강 남한강 팔당호는 물론 선사유적지까지 갖췄다. 특산품은 친환경 키토산 과일이다.
과수나무 임대 분양 등 주말농장도 운영한다. 옛날 아궁이에 불도 때보고 농사체험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골 사람이 된다.
양평군 신론리는 오리농법과 우렁이 농법으로 지은 쌀이 일품이다. 마을 노인회 어르신들이 짚 왕골공예 비법을 전수하고 국궁과 농악도 직접 해볼 수 있다. 박쥐동굴 탐방도 도전해볼 만하다.
진상미 이천쌀로 유명한 이천시 석산리에선 전통 황토염색과 느긋하게 앉아 즐기는 저수지 낚시가 준비돼 있다.
재두루미 청둥오리 노니는 철새마을
50년 가까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파주시 동파리(수복마을)는 생태계의 보고다. 민통선 북방에 있던 주민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1998년 조성된 마을이라 복지회관 농수산물 직판장 주차장 테마공원 등이 깔끔하게 늘어서 정취는 덜하지만 임진강과 인삼 밭, 숲에 둘러싸인 경치는 그만이다.
재두루미 청둥오리 두루미 등이 펼치는 군무(群舞)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자락이 소리 없는 탄성으로 무너진다. 빙어낚시와 스케이트, 눈썰매도 즐길 수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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