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지음 생각의나무 발행·2만원
김우창(66)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인문학자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문학평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사유는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 역사와 사회, 정치, 예술 등 전인적 지평을 아우르고 있어 딱히 어느 한 곳에 가둘 수 없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그를 '세계 최고 수준의 철학적 인간학자'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 라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그의 드넓은 사유의 폭을 보여주는 미학 에세이 '풍경과 마음'이 나왔다.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 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그가 10여년 간 쓰고 말한 에세이와 강연을 모은 것이다. 그림을 보는 그의 눈길은 그의 사상의 요체인 이른바 '심미적 이성'에서 출발한다. '심미적 이성'은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이성의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삶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을 섬세하게 가늠한다.
그는 동양화의 독특함과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을 서양화의 그것과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드러낸다. 이는 우열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상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나란히 검토되는 소재 중 하나가 원근법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된 원근법은 서양화의 핵심 기법이지만, 동양화에는 없다. 원근법은 화가의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공간의 수학적 질서를 구현한다. 주체와 객체가 명확히 분리된 것이다. 반면 동양화에서 화가, 곧 주체는 그림 밖에 있지 않고 그림 속 풍경과 하나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담은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
동서양 회화 기법의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자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동양은 세계와의 일체감을 추구한 반면 서양은 사물을 대상화하는 것으로 자아의 바탕을 삼았다는 것이다.
예민하고 미시적인 접근법으로 씌어진 이 책은 결코 읽기가 쉽지 않다.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골라 쓰는 모습에서는 완벽주의자의 체취가 뚜렷하고, 유장한 문체는 깊은 사유를 싣고 장강처럼 흘러간다.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고 천천히 씹어서 삼켜야 할 책이다. 그만큼 묵직하다.
동시에 무척 아름다운 책이다. 비단 저자의 글과 사유가 지닌 특별한 기품과 향기 뿐 아니라 책의 만듦새 또한 수려하다. 가로 22cm 세로 24cm로 정방형에 가까운 큼직한 판형에 부드러운 빛깔의 노르스름한 종이를 써서 눈이 편안하고, 본문의 글은 줄 간격을 여유 있게 띄워 단정하게 배치했다. 책에 실린 20여 점의 동양화 서양화를 보는 것도 즐겁다. 다만 도판의 인쇄 화질이 좀 더 선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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